미국이 브뤼셀의 유럽연합(EU) 기구와 미국 주재 EU 대사관을 도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미국과 EU 관계가 냉랭해졌다. 양자는 '빅 브러더'를 두고 현격한 시각차를 드러냈는데 이 폭로 이후 시각차는 더 커질 듯하다.
지난해 10월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는 구글에 질의서를 보냈다. 이 편지는 60개가 넘는 구글의 온라인서비스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방법 그리고 이런 서비스에서 얻는 개인정보를 종합해 사용하는 방법을 문의했다. 구글은 법을 준수하고 있다고만 대답했다. 이후 프랑스의 정보 보호 규제기관인 CNIL과 독일, 영국 등 6개 규제기관이 합동조사를 벌였다. 집행위원회는 구글이 이용자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이용자에게 충분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EU 차원의 공동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결론 지었다. 집행위원회는 이에 따라 올해 말 통과를 목표로 데이터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미국 상무부, 브뤼셀 주재 미국 EU 대표부가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등을 대상으로 총력 로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논리는 왜 미국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유럽이 매우 까다로운 정보보호 규정을 들이대어 기업의 혁신을 저해하느냐였다. 이들은 EU의 규제가 비EU 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런 '빅 브러더' 논란은 미국과 EU의 사생활 보호에 관한 극명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미국은 사생활 보호를 소비자 보호의 시각에서 본다. 반면 EU는 사생활 보호를 인권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비자 보호 입장에선 이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생활 보호가 인권이라면 이는 기업 이윤과 차원이 다른 문제로 정부가 적극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제품 정보 등에서 소비자보다 훨씬 우월한 입장에 있는 기업이 소비자의 불만을 제대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EU는 국제무대에서 '규범적 권력'으로 불린다. 환경보호에 가장 앞장서 엄격한 환경 규제를 제정했고 EU 회원국에 제품을 수출하려는 비회원국 기업들은 이런 규제를 수용해야 한다. 사생활 보호에 관한 EU의 규제 강화도 EU의 규범 제정이 파급효과가 큼을 잘 보여준다.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특파원인 에드워드 루스는 최근 글에서 미국의 '데이터정보 복합체(data intelligence complex)'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약 85만명이 여기에 종사한다고 추정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를 경고했다. 4성 장군 출신인 그는 국방부와 방산업체들이 사익을 공익으로 위장해 국방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의 이런 경고는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글로벌 공공재인 인터넷상에서 사생활 보호와 국가안보라는 상충되는 가치 간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혼자 접점을 찾을 수는 없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파이낸셜뉴스 20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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