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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닥터 후’와 창조경제



‘닥터 후’와 창조경제필자는 '어깨동무' '소년중앙'을 읽으며 자란 세대다. 1970년대 초등학생이던 나는 이 책이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두호의 만화가 있었고 타임머신을 다룬 만화도 여러 번 읽어 외울 정도가 됐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가운데 타임머신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상상은 아직도 많은 책과 영화의 소재다. 이런 타임머신을 드라마로 만들어 성공을 거둔 작품이 영국 공영방송 BBC의 '닥터 후(Doctor Who)'다.


'닥터 후'는 1963년 11월 말에 시즌 1이 방영된 후 최근 시즌 8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공상과학(SF)시리즈 '스타트렉'보다도 먼저 방송되었다. '닥터 후'는 미국에서도 아주 인기가 높다. 지난해 BBC의 수출 영상물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프로 가운데 하나로 2011년 말 50여개 나라에서 방송됐고 3억파운드(약 525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웬만한 중견 기업의 연간 매출 정도다.


갈리프레이(Gallifrey) 행성에서 온 영원 불멸의 '닥터 후'가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이 닥터 후는 지구에서 온 여자 조수와 자주 다투지만 둘은 좋은 친구로 여러 가지 난관을 함께 극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배경에다 타임머신이 주는 상상의 보편성을 잘 녹여냈다. 아주 낡은 푸른색 공중전화 박스가 최첨단 타임머신이다. 슈퍼 컴퓨터와 거대한 오징어 괴물, 인조 인간 달렉 등 다양한 종류의 가공할 적이 닥터 후와 대결을 펼친다. 그는 첨단 스크루 드라이버를 사용하며 살상을 하지 않는다. 이 프로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저예산 특수 효과, BBC의 탄탄한 마케팅 네트워크 때문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 프로는 BBC의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잡았지만 한때 폐지가 거론될 정도로 위기에 처한 때도 있었다. 1989년에 방영된 시리즈는 지루한 내용으로 시청률이 너무 낮았고 이런 상황은 200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극작가 러셀 데이비스가 이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닥터 후는 고부가가치 상품인 콘텐츠를 만들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창조경제의 한 단면이다.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의 정의와 실행 방법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이 고부가가치고 창조경제의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시스템 구축이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암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 자질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교육, 정부의 적절한 지원정책, 승자독식이 아닌 상생의 콘텐츠 생태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는 수출품이 되어 마스코트 등 여러 가지 파생상품을 만들어 낸다. 또 이런 콘텐츠는 국가 브랜드의 하나가 돼 국격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한류의 하나로 성공했던 대장금을 능가하는 제2, 제3의 '대장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파이낸셜뉴스 2013.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