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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정의(正義)는 사치품이 아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mizz202


덴마크가 낳은 걸출한 작가로 안데르센이 있다. 인어공주와 미운오리새끼와 같은 세계 명작 동화를 남겼다. 그가 쓴 작품 중에 벌거숭이 임금님이 있다. 동화 속 임금님은 화려하고 멋진 옷을 좋아했다. 남들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허영심도 있었다. 그래서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기하고 특별한 옷을 만들어 주겠다는 사기꾼에 꼬임에 쉽게 넘어갔다.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보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왕은 벌거벗고 거리를 행진했다. 신하들과 어른들은 침묵했다. 결국 한 아이가임금님은 발가벗었다라고 소리친 후에야 모두가 벌거숭이 임금을 비웃었다. 줄거리는 참 단순하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준다.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아주 명백한 사실에 대해 왜 모두가 침묵했을까? 특별한 옷이라는 거짓이 벌거벗었다는 진실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어린 아이가 처벌을 받고 진실이 묻혔다면 이 왕국은 장차 어떻게 되었을까? 왕은 자신이 바보로 보일까봐 침묵했다. 신하들은 왕의 분노를 사거나 바보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일반 국민은 진실을 말하면 자칫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처벌 받을 지도 모르고,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잘못 판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가 진실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나 권력 관계 및 유무형의 압력을 몰랐기 때문이다. '정의'(正義)를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하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문득 이 동화가 떠올랐다.


정의(正義)에서 바르다()는 것은 법과 도덕을 잘 지키고,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지 않고, 공동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풍양속이 존중된다는 것을 뜻한다. 옳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자유와 행복은 물론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 행동과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실천한다는 의미다. 좀 복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번영하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정의는 이 과정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에서 법을 준수할 사람은 없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뇌물이나 인맥에 따라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질 때도 문제다. 품질 경쟁과 소비자 보호 대신 막대한 돈이 로비에 사용될 때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과 같은 부실 공사가 생긴다. 국정원, 검찰, 경찰과 언론이 옳지 못한 일을 할 때 초래될 비용은 더 엄청나다.


늑대가 온다고 거짓말 했던 양치기 소년에게 가장 잔인한 벌은 진실을 말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국가 안보를 담당해야 할 국정원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할 때 안보 위기는 불가피하다. 정치 불개입을 요구한 공동체의 약속을 져 버린 공직자가 처벌은커녕 승승장구할 때 누구라도 모방할 마음이 생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인의 사생활을 파헤쳐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언론사를 방관할 경우 더 많은 언론사들이 통제 불능의 권력이 된다. 공동체가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의 표현이나 사상이라고 해서 여론재판으로 문제를 풀 때 법치주의는 무너진다. 절차와 이성이 배척되고 속단과 열정이 지배할 때 파시즘과 같은 괴물이 필연적으로 등장했다.


정의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다. 국민 1인당 GNP가 좀 더 높아져야 혹은 북한이라는 위협이 없어져야 정의를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정의는 지금 당장 보편적으로 일상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생명체에게 있어 물과 공기가 선택이 아니듯 정의는 공동체의 산소다. 그러나 2013년 가을 한국에서 정의(正義)는 조롱받고 있다. 옳고 바르게 살고자 했던 많은 이들은 가시밭길로 내몰리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과 공동선에는 아랑곳 않는 기회주의자는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역사는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