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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조선일보의 막장뉴스


20세기의 대표적 미국언론인 월터 리프먼은 자신의 저서 ‘여론’에서 “뉴스와 진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뉴스의 기능은 사건을 두드러지게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채동욱 뉴스’는 압권이다. ‘채동욱 뉴스’는 리프먼의 역설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혼외아들’의혹 보도가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 파장은 우리 사회의 민감한 정치적 현안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쓰나미처럼 느껴진다. 조선일보와 그 계열사 TV조선이 만들어내고 있는 ‘채동욱 뉴스’는 세상의 어느 드라마보다 막장의 극적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 절묘한 폭로의 시점과 효과는 정보공작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사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면 그 속내가 드러난다. 지난 9월6일 조선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는 1보를 냈다. 그 시기나 내용으로 보아 폭발적 논란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다. 그가 10여년 간 임씨라는 여인과 혼외관계를 유지하며 11살의 아이까지 두고 있다는 정황이다. 더구나 법무부가 조선일보의 보도를 근거로 약 보름동안 진상조사에 나서 발표한 결과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법무부는 9월 27일 주말 오후를 택해 긴급발표라며 “의혹을 사실로 인정할 만한 정황이 다수 확보됐다”고 발표했다. 법무부가 제시한 근거는 혼외 아들의 어머니로 지목된 임씨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에 채 총장이 자주 출입했고, 채 총장의 고검장 시절 임씨가 부인임을 자칭하고 사무실을 방문했으며, 조선일보의 의혹 보도 직전 임씨가 잠적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사표수리를 건의했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TV조선이 나섰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9월30일 퇴임식을 한지 몇 시간 후 또 한건을 터뜨린 것이다. 임여인 집의 가정부로 일했다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혼외아들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행적을 보도했다. 그가 임여인의 집에서 수시로 잤다는 얘기로부터 아빠로서 아들과의 만남, 그리고 아들의 보모역할을 한 자신에게 썼다는 연하장의 필적까지 검증해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완하고 있다. 아직 폭로의 끝이 아니라는 시사다.


채 전총장은 물론 조선의 보도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유전자 검사를 한 후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문제의 결정적 핵심은 채 전총장의 혼외아들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다. 현재로서는 유전자검사를 통해서만 그 사실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면 그 결과는 조선의 보도를 검증하는 근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보도는 유전자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관련, 검찰이 국정원을 선거법위반으로 기소하자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총장은 사퇴했고 박근혜대통령이 이를 수리했다. 또 현직 검찰총장을 ‘신상털기’로 내쫒았으니 향후 검찰수사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나 이석기의원 등의 ‘내란음모’혐의 등 시국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와 재판에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보인 언론과 권력 간의 결탁의혹은 의혹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합법적으로 얻을 수 없는 사적 정보들을 이용했을 뿐 아니라 정보기관과 함께 정권의 정치공작에 동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런 지적을 하는 언론들을 향해 반격한다.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정상적인 언론들이라면 검찰총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사실여부부터 확인하러 나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혼외아들과 관련,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기초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려 노력한 언론은 없다시피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문제에 관해 조선의 보도는 뉴스로서의 기본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언론계 내외부에서 나온다.


뉴스는 바깥세상을 보는 창이다. 뉴스는 또한 우리에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우리의 공유하는 현실이 대부분 뉴스를 통해 형성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은 뉴스를 통해 ‘가상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뉴스는 단일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사실에 대한 진실’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채 전총장은 유전자검사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유전자 검사가 이루어지거나 다른 방법에 의해 그 결과가 밝혀진다면 어느 한쪽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의 과정에 변수가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전자 검사가 실제로 이루어질지, 또 이루어지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앞으로도 조선일보의 관련보도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에 대한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조선일보의 이번 뉴스도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깥세상보다는 안쪽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창문역할을 하고 있다. 괴물의 모습이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13.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