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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M&A 의지’, 새 성장동력 ‘진주’ 찾을까

삼성전자의 ‘M&A 의지’, 새 성장동력 ‘진주’ 찾을까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10577.html

 

전세계 애널리스트들 불러모아 “인수·합병에 적극 투자” 밝혀 

기업 고르는 안목 필요한데다 인수 뒤 화학적 결합도 과제
‘유기적 성장’ 의존해온 삼성전자 과거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 딛고 인수·합병의 스타가 될지 관심


삼성전자는 지난주 전세계 애널리스트들을 호텔로 불러모았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앞으로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최고재무책임자)은 “솔직히 그간 인수·합병에 소극적이었지만,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보유한 현금을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모임은 지금은 세계 최강이지만 새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안팎의 걱정에 답하기 위해 삼성이 8년 만에 마련한 자리였다. 지난 분기에만 10조원의 영업이익을 쓸어담고 현금성 자산만 50조원을 쌓아 둔 삼성전자이니만큼, 앞으로 어떤 인상적인 인수·합병 딜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하지만 경영진의 호언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돈이 많다고 인수·합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년 이상 인수·합병을 성장동력으로 활용한 일이 별로 없는 회사이다. “삼성에는 인수·합병을 잘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쑥덕거림까지 있었다. 과연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의 스타가 될 수 있을까?


기업의 성장 경로는 내부의 개발역량에 의존하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 등을 활용하는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이 있다. 삼성전자는 두개의 성장트랙 가운데 유난히 유기적 성장 의존도가 높았다. 2010년에 연구개발(R&D) 에 80억달러를 투자한 삼성전자는 올해는 약 140억달러를 투자한다. 2010년 1만5000명이던 연구인력은 지금은 8만명으로 늘었고, 이 중 2만5000여명이 국외의 ‘핵심 두뇌’들이다. 전체 직원 32만6000명의 25%가 연구개발 인력일 정도다.


이렇게 자체 성장 역량이 잘 갖춰진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을 들고나온 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과 소비자의 기호가 발빠른 대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노키아, 소니, 닌텐도 같은 정상 기업이 잠시 한눈을 팔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세상이다. 또 네트워킹과 공유가 핵심인 지식·정보화 시대에 혁신을 회사 울타리 안에 가두려는 것도 구닥다리 생각이다. 그래서 기업을 잘 인수하는 것은 시간과 시장, 그리고 인재를 동시에 얻는 지름길이다.


실제로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성장 엔진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구글만 해도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안드로이드, 유튜브, 더블클릭 등 130개 회사를 인수하며 커왔다. 편입된 업체들은 모바일 운영체제, 동영상 콘텐츠, 웹사이트 광고 등에서 모두 구글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줬다. 지난 3년간 삼성전자는 10억달러를 투자해 의료기기 회사인 메디슨, 뉴로로지카 등 14개 회사를 인수했지만, 올해만 해도 350억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회사로서는 겸연쩍은 실적이다.


이렇게 인수·합병이 부진한 것은, 삼성전자가 정보기술 업체 중에는 드물게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 능력을 갖추고,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합병에 자신없어 하는 분위기가 삼성전자 경영진에게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과거의 큰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1995년 개인용컴퓨터(PC) 시장에서 선두와의 격차를 단숨에 줄이기 위해 세계 6위의 개인용컴퓨터 업체였던 미국 에이에스티(AST)리서치를 인수했다. 하지만 인력이 이탈하는 바람에 10억달러 이상을 잃고 3년 만에 손을 든 적이 있다. 삼성전자 전무를 역임한 한 관계자는 “그때부터 핵심 경영진이 인수·합병이라면 겁을 먹는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 뒤로 쭉 삼성전자는 유기적 성장에 의존해 왔는데, 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장기적 성장 능력에 대한 의문에 시달리고, 2000년대 말까지 주주의 불만을 꾸준한 자사주 매입 등으로 달래야 했다. 2007년 말의 상황도 그랬다. 당시 중국 모멘텀을 업은 포스코의 주가가 1년 사이 두배가 오르며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서는 동안 삼성의 주가는 45만~55만원 사이를 힘없이 오갔다. 성장동력이 부족하다는 질타에 몰리다 못한 윤종용 당시 부회장은 “인수·합병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7000만달러를 들여 인수한 것이 이스라엘의 트랜스칩이었고, 플래시메모리 업체인 샌디스크를 2008년 여름 58억5000만달러에 사려고 시도하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나자 접었다.


인수·합병의 성공에는 기업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고기도 먹어봐야 잘 먹는다”는 말이 맞는다면, 삼성전자의 일천한 경험은 핸디캡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자주 얘기되는 사례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장점을 알아보지 못하고 퇴짜를 놔서 결국 구글 품으로 보낸 일이다. 또 인수 뒤 화학적 결합으로 시너지를 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인수·합병 성공 확률이 70% 정도로 높다는 구글은 인수한 기업의 설립자 중 3분의 2가 구글에서 근무하고 있을 만큼 동화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관리의 삼성이 문화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찌됐건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을 새로운 성장트랙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주로 외국의 선진 기술 기업이 인수의 목표가 되겠지만, 국내에서도 혁신적 벤처가 없진 않을 것이다. 이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성과를 넘기고, 대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더 커가는 생태계가 자리잡는 계기가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3. 11. 10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