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근혜정권의 쿠데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으로 ‘의회 쿠데타’라는 말이 나올 때였다. 2004년 3월12일, 한나라당(새누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합작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기습적으로 가결된 후 국민저항이 촛불시위로 타오르자 한 대학교수가 군사쿠데타 옹호론을 들고 나왔다.
당시 이화여대 행정학과 김용서교수는 한 강연회에서 “정당한 절차의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에는 군부 쿠데타 이외의 방법이 없다”는 논지를 폈다. 그는 이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자 “세계사적으로 좌익정권이 들어섰을 때 군사쿠데타가 있었다는 것을 말했을 뿐 우리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고 빠져 나갔다.
그 군사 쿠데타론이 우연찮게 박근혜정권 하에서 다시 나와 관심을 끈다. 이번에는 부산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하봉규 교수로, 친박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5.16 쿠데타를 합리화하며 군사쿠데타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1987년 이후) 민주화 25년은 반영웅이 대통령으로, 민주주의가 종북친공으로 변질된 전도와 반역의 시도였다”며 “50년 전 군사쿠데타가 필요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고 강조, 계엄령 선포를 주장하기도 했다. 친위 쿠데타 등 ‘제2의 유신’을 상정하는 발언으로 들린다.
10년의 시차를 두고, 상반된 두 정권에서 나온 군사쿠데타론은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취약한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더욱 박근혜정권의 지난 10개월은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가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을 낳게 한다. 당장 벌어지고 있는 철도노조에 대한 그들의 강경책이 이를 웅변한다. 국가폭력을 가장 극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12월22일 무려 5500명의 병력을 동원,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한다며 민주노조의 상징인 민주노총을 덮쳤다. 경찰은 민주노총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정동의 경향신문사 빌딩 전체를 유린했다. 경찰은 일요일의 도심을 하루 종일 난장판으로 만들고 해머로 현관문과 벽을 부수는가 하면 이를 막는 노조원들과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뿌려댔다. 신문을 제작 중인 언론사에 사전통고도 없이 들어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드잡이를 벌이며 노조원들을 연행했다. 경찰은 더구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노조 지도부 9명에 대한 체포영장만을 발부 받아 건물에 난입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명의 지도자도 체포하지 못했다.
다음 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철도노조 파업 등과 관련,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또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모든 문제를 국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언급은 철도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재확인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타협의 물꼬를 막아선 셈이다.
이번 사태가 유신시대인 1979년 8월11일 무장경찰의 신민당사 난입사건과 비교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경찰은 신민당사에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YH무역 여성노동자 170여명을 무자비하게 강제 연행했다. 신민당 의원들이 끌려 나가는가 하면 농성하던 한 여성노동자가 투신, 사망했다. 그때 동원된 경찰이 1000명이었다. 박정희정권은 이 사건 후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제명했고 이어 터진 부마항쟁과 10.26 사태로 종말을 맞았다.
철도노조 파업의 주된 이유는 철도의 민영화다. 이미 외국의 사례에서 철도의 민영화는 요금인상과 사고다발, 그리고 적자노선 폐지 등 공공성 약화를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은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래선지 정부와 코레일은 ‘민영화가 아닌 적자해소를 위한 경쟁체제 도입’ 등 공기업 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으로 인한 민영화를 막기 위해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론 역시 파업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얘기보다 철도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철도노조 파업사태 등을 지켜본 한 대학생이 보다 못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대학 게시판에 붙인 이후 ‘안녕 대자보’열풍은 고등학교와 가정집에까지 불어 닥치고 있다. 민심이 이럴진대 박근혜정권은 여전히 밀어붙이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계속되는 대결국면을 반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대선에서의 부정선거 의제를 잠재우는 것이야말로 박근혜정권의 최대 노림수 중의 하나일 수 있다.
2004년 3월 벌어졌던 ‘의회 쿠데타’를 제압하고 군사쿠데타론을 잠재운 것은 국민의 힘이었다. 그해 4.15총선거를 통해 의회의 쿠데타세력에게 철퇴를 가하자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10년 만에 다시 머리를 든 군사쿠데타론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이다. 그보다 바람직한 것은 박근혜정권이 국민을 이길 수 없음을 먼저 자각하는 일이다.
김광원 언론인 (2013. 12. 27. 저널리즘학 연구소 소장)
'이슈와 쟁점 > 칼럼/기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오년 새해, 어떤 원칙과 신뢰를 지킬 것인가 (0) | 2014.01.02 |
---|---|
광우병 촛불과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의 차이는? (0) | 2013.12.30 |
이봉현의 소통과 불통 (0) | 2013.12.23 |
‘평화담론’이 실종되다 (0) | 2013.12.20 |
공기업 부채의 역설 (0) | 201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