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극우 성향 시장 19년, 도시에 벤치가 사라졌다
지방선거 잘못하면 이렇게 됩니다?… 프랑스 오랑쥬시, 빈민·노인 퇴출 정책에 대중교통도 줄여
프랑스의 공영 라디오 방송 프랑스퀄티르(France Culture)가 극우 성향 정당 국민전선(FN) 출신 쟈크 봉빠르(Jacques Bompard)가 시장으로 있는 오랑쥬(Orange) 시민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팟캐스트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년 가까이 극우 정당이 장악한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넉 달 가까이 앞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이민·반유럽연합(EU)을 주장하는 국민전선은 1972년 창당한 이래 2002년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에서 좌파를 제치고 결선에 진출한 이래 상당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브리뇰 지역 도의원 보궐 선거에서 압승한 이래 최근까지 여론조사에서 국민전선이 계속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데다 집권 여당인 사회당이 우파 야당인 대중운동연합에도 밀리는 양상이라 오는 5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국민전선이 약진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쟈크 봉빠르는 1995년 국민전선 소속으로 오랑쥬 시장에 당선된 이래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2010년에는 국민전선이 이민자 문제에 유약한 태도를 보인다며 국민전선을 탈당해 남부동맹이라는 독자 정당을 창당했다. 1995년 이후 오량쥬 시의회는 극우 성향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35명 의석 가운데 우익연합이 29명, 우파연합이 2명, 좌파연합이 4명씩이다. 오랑쥬 시의회 녹색당 소속의 안느마리 오떵 의원에 따르면 쟈크 봉빠르는 시 의회에서 공공연하게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많다, 충분하다”고 말하곤 했다.
봉빠르 집권 이후 가장 놀라운 변화는 대중 교통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오랑쥬는 북부 지역에 사회주택이 밀집해 있고 상업시설은 남부 지역에 몰려 있는데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은 대중교통이 없으면 상업시설을 이용하기 어렵다. 그런데 봉빠르는 버스 운행회수를 점점 줄이더니 지난 여름에는 노선을 대폭 축소했다. 봉빠르는 아예 모든 공공 대중교통을 없애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오랑쥬 시청은 방송 직후 버스는 중단되지 않았고 아직 운행 중이라고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오랑쥬 시청은 프랑스퀄티르와 인터뷰한 일부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프랑스퀄티르는 봉빠르 집권 이후 취약계층 지원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시의 예산으로 인종적으로 고립을 유발할 수 있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소년들의 직업훈련과 취업을 지원하는 직업학교 ‘Mission locale des jeunes’가 오랑쥬에는 없다. 오랑쥬는 사회복지 정책이 프랑스에서 가장 취약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봉빠르 시장은 복지 재정을 줄여 도심 재개발 등에 투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프랑스퀄티르의 기자가 만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재정 지원이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보복이 두려워서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퀄티르의 기자는 “오랑쥬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이상함의 실체는 시내에 공공벤치가 없다는 것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오떵 의원에 따르면 이민자들이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기 싫다는 이유로 벤치를 없애고 화단으로 대체한 결과다. 시의회에서 야당이 노인들이 쉴 곳이 없다며 문제제기를 하자 세 발 플라스틱 의자를 설치했으나 노인들은 제대로 앉기도 힘든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심지어 북부 지역의 젊은이들이 시내에 차를 몰고 들어오면 까다롭게 검문을 하고 단속을 해서 시내에 들어오는 걸 귀찮게 만들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오랑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지만 정작 오랑쥬 시민들은 도심 진입을 제한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기자가 도시 외곽 저소득층 밀집지역을 돌아보니 도로 변에 낡은 차들이 주차돼 있고 동네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폐차 직전의 차들이 갈 곳도 없고, 앉을 곳도 없는 젊은이들이 하루 종일 친구들과 노래를 듣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청년의 이야기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도 없고 구직 등에 관련된 도움도 받기 어렵다. 시내에 들어가면 안 좋은 시선을 받는다.”
취약계층 지원을 줄여서 도심 외곽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 지역을 떠나도록 만들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민자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들이고 이민 2세들의 경우 가난하기 때문에 갈 곳이 없어 머무는 것이지 사회복지 서비스 때문에 이 지역에 머무는 게 아니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줄인다고 해도 다른 도시로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프랑스퀄티르는 “시장은 이들이 오랑쥬를 떠나거나 이 동네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격리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이런 정책이 오래되면서 시민들이 이런 차별 정책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떵 의원은 “고립된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인근에 아무런 건물이 없기 때문에 주차 문제가 없는데도 경찰이 상시적으로 매복하면서 주차 단속을 하고 있다”면서 “시는 영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몰아내는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사원 관계자의 이야기다. “2009년에 시장이 외부 이전을 제안했는데 1만유로라던 땅값이 2011년에 13만유로로 뛰어올라서 이전을 취소하게 됐다”면서 “시장은 자기 도시에 이슬람 사원도 이슬람 신자도 머무는 것이 싫어서 이런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랑쥬 시청은 “이슬람 사원에 그들이 원하는 땅을 제시했는데 거부했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현재 이슬람사원은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된 구역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상태다.
이 팟캐스트를 번역해서 소개한 엄형식 국제노동자협동조합연맹(CICOPA) 연구원(벨기에 리에주대 박사과정)은 “전반적으로 종합하면 오랑쥬 극우파 시장의 정책 기조는 ‘가난한 사람, 외국인 이주 노동자, 능력 없는 노인들을 위한 정책은 없다’, ‘내 말을 안 들으면 보조금도 없고, 갖은 수를 다해서 괴롭힌다’, ‘공공서비스가 부족해서 도시를 떠나면 좋다, 우리는 부자만 좋다’ 정도로 요약된다”면서 “당장 도 교육청과 도청에서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좌파 정책이라고 무상급식 실시를 거부하고, 자기에게 반대한다고 고소고발을 일삼는 한국의 어느 도지사와 시장이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 (2014. 1. 29.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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