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중국에 ‘별그대’를 계속 수출하고 싶다면
중국은 더 이상 저임금에나 기대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전자, 조선, 철강, 정보기술(IT)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우리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난해 삼성과 엘지(LG)가 야심 차게 내놓은 곡면 초고화질(UHD) 텔레비전을 1년도 지나지 않아 중국 업체가 국제 전자쇼에 출품할 정도다. 지난주 만난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우리는 도저히 그 가격에 만들 수 없는 중국산 소형차가 에프티에이를 타고 밀려올까 걱정”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한 곳(30조4000억원)이 지난해 우리 상장기업 이익의 절반을 올렸다. 몇몇 대표선수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 허약한 한국 경제에 이렇게 중국이 바싹 파고드니 “앞으로 우리는 뭘 먹고 사냐”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닫히는 문이 있으면 열리는 문도 있는 모양이다. 바로 드라마, 가요, 게임 같은 문화 콘텐츠 분야가 새로운 희망이다. 누적 시청수 25억건으로 중국내 사상 최고를 기록한 <별에서 온 그대>에서 보듯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즐기는 중국 소비층은 이미 두텁다. 요즘 중국인들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한국 문화 콘텐츠를 거의 시차 없이 접한다. 그만큼 반응도 즉각적이고 뜨겁다. 소득이 늘고 디지털 매체 사용에 익숙해진 중국의 중산층이 문화 소비에 나선 것인데 시장은 계속 확산될 것이다. 문화 콘텐츠는 파생소비를 낳는데 <별그대>를 보고 천송이 코트를 구입하려고 한국 온라인 상점에 접속하는 것이나 치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게 그것이다. 기업들이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현 정부는 콘텐츠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감기를 앓고 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첫 외부행사로 문화융성위원회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은 “콘텐츠의 생명은 창의성인데 창의성을 저해한다든가 산업 진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들은 하루속히 원수라고 생각하고 철폐해야 한다”고 다시 규제완화에 힘을 주었다. 정부는 2000억원 규모의 한-중 합작 펀드를 만들어 문화 콘텐츠 시장 진출을 돕기로 했다. 합작 콘텐츠는 공동제작물로 인정돼 수입쿼터 같은 규제를 우회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마이스터교를 문화로도 확대해 2016년까지 개교하기로 했다.
한류의 진화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산업’에 방점을 찍더라도 토양이 되는 문화가 메마르지 않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인문학 붐 속에서도 자본의 조명을 못 받는 인문학의 그늘은 더 짙어지는 게 요즘이다. 요즘 큰 출판사에서도 직원을 뭉텅이로 감원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밀려 성인이 한 달에 책을 한 권꼴로도 읽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신문의 날인데 신문을 정기구독하는 가구의 비율은 10년 전 50%에서 20% 아래로 내려왔다. 읽기와 쓰기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창의성의 원천이지만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사라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화려할지 모르나 제작자들의 삶은 저임금과 불완전 고용으로 점철돼 있다. 박 대통령도 언급한 대로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대박을 터뜨린 어린이 그림책 <구름빵>의 원작자가 얻은 수입은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취업률에 밀려 대학의 예술학과는 폐과나 통폐합에 몰리고 있다.
중국이 언제까지 바탕이 허약한 우리의 문화 콘텐츠를 소비해주는 시장으로만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당 서열 6위인 왕치산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한국 드라마가 중국을 왜 점령했는가”라고 한 탄식 속에서 그들의 결기를 읽어야 한다. 큰 내수를 바탕으로 과감히 투자해 따라잡는 제조업 방식을 중국이 문화에 적용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4대 기서를 비롯해 중국은 원본이 되는 스토리의 왕국이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국제 에디터 (2014. 4. 6.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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