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구활동

언론계 신화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

언론계 신화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


[김성해의 뉴스생태계 따라잡기] 권력 앞에 꼿꼿했던 펜의 힘


교과서가 없었던 조선시대. 모든 사대부의 필독서는 사서오경이었다. 그 중에 하나로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의 역사 해석서 <춘추>가 있다. 고려 때 세워져 조선까지 이어진 국가기록원의 이름도 춘추관이다. 역사의 최초 기록자라는 평가를 받는 언론인을 위해 청와대에 마련된 부속건물의 명칭이 춘추관이 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해 진실을 기록하자는 의미다. 위화도회군, 계유정란, 임진왜란, 병자호란 및 동학혁명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발자취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끝없이 되묻는 것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불합리한 현실의 결정을 낳고 결국 미래의 위기로 이어진다. 뉴스생태계에도 반드시 기억하고, 그 의미를 성찰하고,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신화적인 사건이 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1972년 6월 17일. 민주당 선거본부가 있는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불법 침입했던 5명이 경찰에 구속되면서 시작된다. 단순 강도사건이 아니라 도청기를 재설치하기 위한 침투였다. 그 중 한명은 전직 CIA로 밝혀졌고, 닉슨 대통령의 자문관이었던 에드워드 헌트의 전화번호도 갖고 있었다. 백악관은 3류 도둑사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지만 불법도청을 지시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비용은 어떻게 조달됐고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약관의 기자가 던진 집요한 질문 


만약 공화당의 재선위원회(CRP) 자금과 인력이 사용됐다면 현직 대통령과 측근은 얼마나 연루된 것일까? 불법도청 시도는 일회성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불법적인 선거운동이 더 있는 것일까? 또한 범인들의 변호사 비용과 FBI의 조사를 막으려는 시도는 어떻게 가능할까? 약관 20대에 불과했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던진 질문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연루됐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은 고단했다. 재선에 성공한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은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고 FBI, CIA 및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FCC) 등을 모두 동원했다.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 편집주간 벤자민 브래들리, 편집국장 하워드 사이먼스 등 관련 기자들은 구속의 위협을 받았으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무려 2년에 걸친 투쟁 끝에 진실은 마침내 승리했다. 닉슨 대통령 자신은 물론 보좌관 존 에일리크먼과 비서실장 H 홀더먼 모두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법도청만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대상으로 랫퍼킹(Ratfucking)이라는 불법선거운동도 확인됐다. 


민주당 후보자들의 가족 미행하기, 그들의 사생활 자료 수집하기, 후보자들의 문구가 들어간 편지지를 이용한 편지 위조 및 배포, 신문에 거짓 정보나 날조된 정보 누설, 유세일정 교란시키기, 선거운동 기밀자료의 탈취, 다수의 민주당 선거운동원 사생활 조사 등 그 종류와 규모도 엄청났다. 백악관의 많은 고위관료들 또한 구속됐고 닉슨 대통령은 결국 사법방해죄, 권력남용죄, 의회모욕죄로 탄핵을 당했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언론 앞에 고개 숙인 대통령 


1974년 8월 8일. 닉슨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직 사퇴를 공식발표했다. 당시 회견문에서 그는 “오늘 나는 대통령으로서 가장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나의 가장 친밀한 동료 두 명의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밥 홀더먼과 존 에일리크먼, 이 두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공복입니다… 사실을 밝혀낸 것은 제도입니다. 이 경우 제도는 결연한 태도를 견지한 대배심이며, 정직한 검찰이며, 용기 있는 판사 존 시리카이며, 활발하고 자유로운 언론입니다”라고 말했다. 


로널드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 또한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 보도를 비난했던 것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와 그 신문의 두 기자에게 공식 사과했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워싱턴포스트, 대배심을 이끌면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존 시리카 수석판사, 그리고 상원의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와 아치볼트 콕스 특별검사 등이 협력해서 일궈낸 수확이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사람이 공저한 <워터게이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지금도 사회과학의 필독서다. 뉴스생태계에 워터게이트 사건이 남긴 유산 또한 엄청나다. 


언론의 존재이유. 가장 두드러진 유산 중의 하나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대통령과 측근, 대기업, 군대, 검찰과 비밀 정보부는 지금도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 일반인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얼마나 공정한지, 정말 현명한 판단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할 수 있고, 언론을 조작할 수 있으며, 관료조직을 이용해 정의를 짓밟을 수 있다. 진실을 은폐할 수 있을 뿐더러 왜곡된 정보와 조작을 통해 그럴듯한 진실을 만들기도 한다.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이들을 감시한다. 권력집단의 부정을 고발하고, 비리를 파헤치고, 국민의 공복으로서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켜본다. 물론 당시 두 기자는 일개 국민으로서 자신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무례하거나, 대통령이라는 제도에 타격을 주거나, 궁극적으로 국가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진실을 택했다. 진실로 인해 국가이익이 일시적으로 제한을 받을 수 있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진실과 국가이익은 충돌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다. 또 다른 유산은 인터넷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와 뚜렷이 구분되는 뉴스의 본질을 보여준 데 있다. 


집단창작물로 일궈낸 언론 전문성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는 1인극이 아니었다. 집단창작물이었다. 자살한 남편을 대신해 발행인을 맡았던 그레이엄 캐서린 여사는 가장 바깥에 있는 보호막이었다.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비롯해 닉슨 행정부의 외압을 막았고, 기자들을 대신해 감옥에 갈 것을 자청했고, 소속 기자들을 무한 신뢰했다. 


벤자민 브래들리, 하워드 사이먼스, 해리 로젠펠드, 베리 서스먼 등 편집국 간부들은 관련 기사 작성에 공동으로 참여했고, 문장을 다듬었고, 행여 있을지 모르는 사실관계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초년병 기자가 겁에 질렸을 때는 위로했고, 정보원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수정을 지시했고, 명확한 사실이 아닐 경우에는 보도를 막았다. 취재 및 보도의 원칙도 확립했다.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현직 대통령을 거역할 취재원이 없을 때도 포스트 기자들은 뉴스를 위해 취재원에게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지 말 것, 취재원이 원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인터뷰를 강요하지 말 것, 불법 도청이나 부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지 말 것, 익명을 보장했을 경우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 등의 원칙을 지켰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가령, 백악관 비서실장 홀더먼의 관련설을 보도하기에 앞서 두 기자는 딥스로트로 알려진 익명의 FBI 관료, 재정을 담당했던 휴 슬로언의 증언, FBI 담당 수사관 및 백악관의 법률 전문가 등 4명의 정보원으로부터 확인 작업을 거쳤다. 


편집국 간부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두 기자를 대상으로 실제 취재과정을 재연하도록 했고 의문이 나는 점에 대해서는 확인을 요구했다. 뉴스에 등장하는 이해관계자의 반론을 반드시 실었고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실을 적었다. 언론인의 전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도 있다. 


정확한 정보, 정확한 질문, 정확한 팩트 


언론은 진실을 찾아가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무수한 취재원을 인터뷰하고, 또 온갖 루머와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야 한다. 냉철한 분석력, 효과적인 인터뷰 기술, 본질을 꼬집어내는 통찰력과 자료수집 및 요약능력이 요구된다. 출입처에서 나눠주는 보도자료를 뉴스로 내보내는 것은 이런 전문성과 무관하다. 


권력형 비리와 같은 복잡한 사안을 다룸에 있어 정확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당연히 특정 주제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역사적 맥락, 핵심적 이해관계 및 전후좌우 맥락을 알아야 한다. 


정확한 문장력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뉴스의 본질로 인해 법적 분쟁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이 따른다. 위협을 당하는 피보도 대상자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한 정확하고, 충분한 확인 작업을 거친 정보의 생산, 단어 선택, 문장, 팩트에 대한 반복적인 확인은 그래서 필수다. 


끝으로 모든 공격은 결국 메신저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높은 윤리성과 공익의식도 필요충분조건이다. 특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거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언론인에 대한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기자들은 신뢰를 받았고 그 덕분에 진실의 수호자가 될 수 있었다. 


김성해 대구대학교수/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위원 (2014. 10. 30. 더피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