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구활동

디지털 혁명과 뉴스학(Newsology)의 탄생:




디지털 혁명과 뉴스학(Newsology)의 탄생:

전공학문의 가능성, 한계 및 전망


본 글은 2014학년 언론정보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임을 밝힙니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교수)

진민정 (대구대학교, 박사후 연구원)


1. 뉴스의 진화와 미래의 뉴스

디지털 시대, 뉴스는 어디에나 있다. 특정한 매체에 실려 정해진 시간에 전달되던 과거와 달리 뉴스는 24시간 깨어 있다. 굳이 뉴스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뉴스가 스스로 찾아온다. 뉴스의 형식이나 내용도 파격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뉴스, 애니메이션에 담긴 뉴스, 동영상과 인포그래픽을 통한 뉴스는 낯설지 않다. 과거의 뉴스란 말도 틀렸다. 디지털을 통해 구축된 뉴스 아카이브를 통해 과거의 뉴스는 현재의 뉴스와 만나 새롭게 결합된다. 특정한 뉴스가 편집되고 재가공되고 전혀 다른 형태의 뉴스로 포장되는 것도 흔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뉴스는 이제 후미진 구석에서 소수의 소비자가 찾던 상품에서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처럼 누구나 당연히 지나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품목으로 성장했다. 단순히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는 편재성만이 아니라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은 뉴스다.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남을 경제적 이윤이 보장된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야후 등에서도 뉴스는 단골 메뉴다. 알고리즘이나 로봇을 이용해 뉴스를 자동으로 수집하거나 직접 뉴스를 제작한다. 뉴스를 핵심 상품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끌어 간다. 뉴스를 통한 비즈니스 영역은 그 밖에도 다양하다. 가령, 블로그에서 출발한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해 <업워시닷컴>, <바이스닷컴>과 <비즈니스 인사이트> 의 방문객과 수익 규모는 기존 언론사를 압도한다. 광고를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 뉴스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 자체를 통해 대안적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키는 경우도 많다. 주로 탐사 뉴스에 집중하는 <프로퍼브리카> <메디아파르트> 및 <텍사스트리뷴> 등 비영리 매체의 규모와 영향력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은 뉴스가 접목되고 있는 영역도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


정치뉴스, 경제뉴스, 의학뉴스와 과학뉴스란 말은 낯설지 않다. 정치와 경제와 관한 뉴스라는 의미와 뉴스를 통한 정치와 경제행위라는 의미를 모두 갖는다. 전통적으로 뉴스와 무관했던 분야도 변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간 전쟁, 무역과 문화교류 등을 의미하는 외교에서 뉴스는 꾸준히 존재감을 높여왔다. 글로벌 사회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행위자의 공감과 동의(Hearts & Minds)를 얻는 데 있어 뉴스는 가장 효과적인 담론 중의 하나다. 영화나 음악과 달리 이성에 호소하는 뉴스는 부정적인 이미지나 정서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 있어 힘이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맞아 미국의 CNN이나 영국의 BBC과 같은 믿을 수 있는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의 영향력은 오히려 늘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 각자의 책임도 더 커졌다.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분간할 수 있는 안목은 물론, 뉴스가 생산되고 확산되는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일상 생활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 관한 대중적인 공적지식으로 알려진 뉴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양극화 역시 심화되고 있다. 뉴스안전이라는 새로운 영역도 생겼다.


전통적으로 뉴스의 대상은 권력을 가지거나 유명하거나 공적인 인물에 국한되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제 누구나 뉴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뉴스의 대상이 될 경우 직면하게 될 위협 또한 증가했다. 잘못된 뉴스나 의도하지 않은 뉴스로 인해 사생활이 파괴되거나 회복 불능의 인격 살인을 당하거나 명예훼손을 당할 수 있다. 안전사고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불량식품, 교통사고 또는 전염성 질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거나 시간을 두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뉴스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뉴스안전(News Security)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그 밖에도, 진실한 정보라는 특성을 가진 뉴스를 활용한 홍보는 이미 상식이다. 정부, 대기업과 각종 이익단체는 더 이상 보도자료에 의존하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이나 SNS를 통해 동영상, 팟캐스트와 복합텍스트(Hypertext) 뉴스를 직접 생산하고 수용자들과 소통한다. 지금과 같은 뉴스의 확장성과 파급력을 감안했을 때 뉴스의 미래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뉴스는 공동체에 참가하기 위해, 소통하기 위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발명품이다. 본질적으로 전화기, 자동차, 전기와 컴퓨터와 다르지 않다. 등장 초기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어느 순간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진화한 것도 유사하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본능적으로 모든 정보를 교환하는 것처럼 디지털 혁명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고 상호작용하게 되면서 뉴스를 외면하고 살 길은 없다. 앞으로 10년 뒤 또는 100년 뒤 일상 생활에서 뉴스가 차지할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관련 법규, 비즈니스 기회, 참여자, 특화된 연구와 관련 전공분야가 파생된 것과 같은 상황이 뉴스에서도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물론 지금도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정보커뮤니케이션학, 저널리즘 등 뉴스를 다루는 학문은 있다. 그러나 정치학에서 경제학, 사회학, 국제관계학과 심리학 등에서 보듯 특정한 분야의 성장에 따른 분화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언론학 또는 커뮤니케이션학이 내포하고 있는 정체성의 혼돈이라는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저널리즘은 날마다를 뜻하는 저널(journal)과 생각과 논리를 뜻하는 이즘(ism)이 합쳐진 개념이다. 곡물가격이나 상품시세 등이 하루(Daily)를 기준으로 갱신되었기 때문에 일간신문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뉴스 생산의 주기는 없어졌다. 단순히 주기를 뜻하는 저널리즘을 고집할 수 없다. 일본에서 번역된 언론이라는 개념도 수정이 필요하다. 언론은 논리를 가진 말이라는 의미에서 대중적 담론이라는 뉴스의 본질을 잘 나타낸다. 그러나 뉴스는 이미 규모, 양식과 주제, 생산과 소비 방식 등에서 대중적 담론의 한 부분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동일한 영상물에 속하지만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영화 등이 각각 분리된 것처럼 정보, 담론, 지식에서 뉴스를 분리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백화점식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분류하는 것도 생각할 문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과와 외과라는 단순한 구분만 있었던 병원의 진료과목이 이비인후과, 척추과, 비뇨기과, 내분비과 등으로 세분화 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뉴스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 또한 발견되고 있다.


뉴지엄(Newseum)은 미국 워싱턴에 들어선 뉴스 박물관이다. 뉴스의 역사는 물론 주요 뉴스 생산자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민주주의 운영에서 뉴스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뉴스의 발전을 위해 공동체가 지불해야 했던 비용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종이신문, 방송, 카메라, 타이프라이트, 녹음기 등 뉴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데 이용되었던 다양한 테크놀로지도 보관되어 있다. 역사, 정치, 경제 및 사회 관점에서 뉴스를 정리하고,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공 학문으로 뉴스에 특화된 것은 아니지만 캐나다의 라이어슨대학(Ryerson University)처럼 홍보전문가와 뉴스 비즈니스 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뉴스연구(News Studies) 부전공을 개설한 사례도 있다. 2011년 발간된 이강수의『뉴스론: 미디어 사회학적 연구』역시 일반적인 매스컴 이론에서 뉴스를 독립시켜 살펴본 경우다. 지리상 발견과 산업혁명을 계기로 경제학과 사회학 등이 태동한 것처럼 디지털 혁명을 통한 뉴스학의 탄생을 말하는 까닭이다.


물론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먼저 경제학, 사회학이나 심리학처럼 독립된 전공 학문으로 뉴스학을 분리시켜야 하는 이유는 있는 것일까? 기존의 언론학이나 커뮤니케이션학 또는 정보 커뮤니케이션학이 아닌 뉴스학을 굳이 말해야 하는 이유는 있을까? 뉴스학에서 동원할 수 있는 이론적 및 실천적 자원은 무엇일까? 뉴스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과로 분류할 경우 그 내부적으로 어떤 교과목이 포함될 수 있을까? 이 전공을 택할 경우 어떤 학생이 지원하고 졸업 후에는 어떤 진로를 갖게 되는 것일까? 또한 뉴스학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지속가능한 분야로 비전 있는 전공과목이 될 것이라는 근거는 있는 것일까? 이 글에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뉴스가 독립된 학문 주제가 될 만큼 성장했는지를 알아보는 작업이 이 연구의 출발점이다. 뉴지엄을 비롯해 뉴스를 매개로 비즈니스를 하는 다양한 매체, 뉴스를 핵심으로 하는 교과 과정, 뉴스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 뉴스를 본질로 하는 외교, 리터러시, 생태학 등의 다양한 영역을 이 장에서 살펴본다. 그 다음, 제2장에서는 전공 학문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뉴스학이 등장할 만한 여건이 성숙했는가를 분석한다. 뉴스학의 계보에 대한 연구는 제3장을 통해 진행된다. 뉴스학이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정보 커뮤니케이션학, 언론학 및 저널리즘 등과 동일한 점과 차별성을 정리하고 뉴스학으로 교통정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제4장은 뉴스학과가 설립될 경우 포함될 수 있는 구체적인 교과목에 대한 소개 및 간략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뉴스생태학, 뉴스경영학, 뉴스홍보학, 뉴스외교학, 뉴스리터러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제5장은 뉴스학을 둘러싼 다양한 비판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연구자의 반론을 싣는다. 예컨대, 뉴스학이라는 개념이 가진 문제점, 뉴스학의 모호한 정체성, 뉴스학과 언론학 등 관련 학문의 중복성과 단일 학과 설립의 부작용 및 뉴스학에 관한 이론적 결핍 등에 대한 찬반 입장을 이 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금껏 뉴스학은 제기된 바 없다. 연구자들의 역량이 신규 학문의 정당성과 정체성 및 비전을 한꺼번에 정리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을 계기로 뉴스의 편재성과 확장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뉴스학은 정치와 경제처럼 공동체의 본질적인 영역은 아니지만 영화, 광고, 자동차와 휴대폰처럼 단순한 상품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동차학이나 영화학은 있지만 뉴스학은 없다. 뉴스가 삶의 본질적인 영역으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언론학 또는 커뮤니케이션학의 한 부분으로만 다루어진다. 연구자들은 이런 배경에서 뉴스학의 가능성, 한계 및 비전에 관한 이론적 탐색을 시도했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는 지혜로운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뉴스학에 대한 탐색 작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디지털혁명과_뉴스학의_탄생.pdf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널리즘학 연구소 연구위원 (2014.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