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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한국 저널리즘의 후퇴, 환경감시의 퇴화


공동체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그물망에 위치해 있다. 엄연히 약육강식이 적용되는 국제사회에서 모든 주권 국가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고, 자국의 통화를 지키며, 문화적 정체성을 보호하고, 나아가 안정적인 경제 및 사회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 안보 문제를 소홀히 했던 많은 국가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고 그 생생한 증거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 등에서 볼 수 있다.

자본자유화가 확대되면서 자국의 통화가 거래되는 상황이 왔고 통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많은 국가들이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었다. 국제무역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부가 상품을 파는 선진국과 커피와 고무 등 1차 원재료를 파는 후진국의 빈부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공동체의 가치관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화, 드라마, 소설과 음악과 같은 문화상품과 뉴스 역시 평등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약소국은 항상 강대국이 전해주는 문화상품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부서지고 미국화 또는 서구화를 위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러한 국가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사건, 이슈, 쟁점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임박한 위협을 경고하며, 공동체 구성원이 합리적이고 성숙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이전 한국 언론은 국제사회에 대한 환경감시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 경제, 안보와 문화 등 한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다양한 곳에 특파원을 직접 파견했고, 기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모색했다. 그러나 경영위기에 내몰리면서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특파원은 급격하게 줄었다. 지상파 방송에서 파견하는 특파원 역시 미국, 중국, 일본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건이나 이슈는 주로 미국과 영국의 통신사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연합뉴스>가 있지만 언론사를 대상으로 도매상을 하는 매체의 특성상 국민이 필요로 하는 분석적이고 심도 깊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사회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면서도 정작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 수준은 낮고, 국제적 공동현안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고, 국가이익과 관련된 많은 이슈와 사건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1인 미디어, 블로그, 인터넷 매체 역시 이 영역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과 냉정한 판단력 및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국제보도가 아마추어 언론인이나 시민기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도 환상이다.

2001년 9.11 테러가 있기 전 경제적 이유로 국제보도를 대폭 줄였던 미국 언론사들이 그 이후 고비용을 무릅쓰고 국제뉴스를 확대하고, 중국과 러시아와 프랑스 등이 국가가 지원하는 24시간 영어채널을 출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환경감시
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저널리즘은 1997년 이후 뚜렷이 후퇴했다. 환경감시의 무대를 국내로 돌렸을 때도 이러한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언론의 환경감시 대상은 공공이익과 보편적 가치로 구분할 수 있다. 공공이익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반 활동과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고 치안을 확보하는 일,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 고속도로와 하천을 관리하는 일,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상수원을 관리하는 일, 도서관이나 문화시설을 운영하는 일 등이 있다.

언론은 따라서 이러한 공적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나 개인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공동체의 번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발생하는지, 공공이익을 훼손하는 조직이나 개인이 있는지를 감시하고 해당 사례가 있으면 구성원에게 알려준다. 공동체가 보다 강하고, 부유하고,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전해주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공동체는 또한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공동으로 추구하는 특정한 가치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정의, 공정, 평등, 평화, 공존, 행복, 인권, 자유, 생명 등이 있다. 언론은 이에 따라 이러한 보편적 가치가 위협받지 않도록 미리 경고하고, 문제점을 알리고, 대응책을 찾도록 촉구한다.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를 하는지, 검찰이나 경찰이 주어진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집단이 있는지, 국민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는지,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이 모두 환경감시의 대상이 된다. 권력집단의 권력남용과 비리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은 국민의 자유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부당하게 유린되는 현실을 고발했다.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대기업, 검찰, 정부, 군대 등에 용감하게 맞섰다. 민주화 이후에는 보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인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적극 대변했다. 지역 차별, 학벌 차별, 남녀 차별의 문제점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국내 언론의 환경감시 기능은 그러나 최근 들어 현저하게 악화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이 아닌 자기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는 보도가 많아졌다. 대기업을 포함한 주요 광고주의 비리와 반칙을 고발하는 경우도 훨씬 줄었다.“모든 시민이 기자다”를 선언했던 <오마이뉴스>와 <나는 꼼수다>와 같은 대안 언론이 등장하는 것도 전통적 언론이 환경감시 기능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 신문이나 나꼼수 등이 제대로 훈련받고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전통적 언론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다. 1인 미디어들이 삼성, 검찰, 정부의 주요 정책을 비판하고 권력 내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비리의 현장을 적절하게 고발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영화 ‘도가니’나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를 고발한 ‘부러진 화살’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언론이 환경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한국 사회가 더 평등해지고, 더 평화로워지고, 더 공정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안전해지고, 더 생명이 존중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물론 삶의 질이 이처럼 악화된 것이 반드시 언론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공공이익과 보편적 가치에 대한 환경감시 기능을 제대로 했을 경우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