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웃고 있다. 여야가 약속이나 한듯 함께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전담 수사하는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공수처 운운은 이미 이솝우화의 ‘늑대소년’이 된지 오래다. 이 논란은 여야 간 동상이몽이 만들어내는 허무개그 수준이다.
이번에는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얘기를 먼저 꺼낸 쪽은 민주통합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다. 그는 7월17일 국회 원내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국회에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설치해 검찰의 성역을 없애고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이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도 이날 오후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한다면 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제대로 된 기관을 만들더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번번이 공수처 신설을 반대해온 새누리당의 전력을 의식했음인지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지금까지 우리당은 공수처 설치에 부정적이었지만 검찰이 계속 수사를 못한다면 입장이 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정당의 속셈이 같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 수는 너무 뻔히 보인다. 그 속내는 다음 날인 7월18일 19대 국회 첫 대정부 질문에서부터 드러났다. 새누리당은 저축은행 관련 금품 수수혐의로 검찰소환을 받은 박지원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 반면 민주당은 이를 정치탄압이라고 일축하고 이명박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와 박근혜 의원의 동생 박지만씨 등에 대한 저축은행 비리의혹 등을 따졌다.
여야가 모두 검찰의 저축은행 수사그물에 걸린 모습이다. 정권 말기만 되면 벌어지는 유사한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정권과 밀월을 즐겨온 검찰이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한 것부터가 그렇다. 그러나 그 이면을 면밀히 살펴보면 역시 정치검찰의 치밀한 자기보호와 미래권력에 대한 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공수처 설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 사저의혹과 BBK가짜 편지사건에 대한 면죄부나 불법 민간인 사찰에 대한 꼬리 자르기와 물타기 수법 등이 대표적이다. 오죽해야 이상득 전 의원 구속에 대해서도 봐주기를 위한 ‘맞춤형 수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전 의원의 구속과 함께 박지원 대표및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한데 엮이면서 외견상 여야 모두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민주당은 치명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축은행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이용된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해 6월 여야 간에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소위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에 합의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에도 중수부를 폐지하는 대신 공수처를 만들어 고위공직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권을 주자는 것이었다. 이 합의 후 검찰총장까지 전면에 나서 결사적 반대에 나섰다. 중수부의 저축은행 수사가 그 빌미였다. 저축은행 비리라는 거악(巨惡)척결을 내세워 중수부 폐지를 반대했고 청와대도 이에 합세했다. 여당은 결국 며칠만에 의총에서 중수부 폐지결정을 뒤집었다.
그런 새누리당이 19대 국회에서 또다시 공수처를 만들겠다고 나선다니 그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소환을 압박하는 정치적 목적에 오히려 방점이 찍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자당소속의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려던 의도 역시 이와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게 됐다. 더욱 그 체포동의안마저 부결됐으니 스스로 국회가 이익집단의 하나임을 확인해준 셈이다.
이래가지고서야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검찰개혁의 핵심인 중수부 폐지와 공수처 설치를 하지 못한 것도 새누리당의 책임이 크다. 기왕에 거론되는 검찰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19대 총선공약에서 스스로 불체포 특권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새누리당 아닌가.
검찰의 정치권 수사논란이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는 최선의 방법이야말로 공수처 신설이다. 그리고 공수처의 수사대상에 국회의원은 물론 검사도 포함시키는 것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포기하는 첫 걸음이자 정치검찰 논란의 소지를 없애는 지름길이다. 국회가 검찰의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김광원칼럼 (내일신문 201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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