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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칼럼] 제주 올레길의 감시카메라

“중산간(中山間)을 봤다고, 오름을 안다고 얘기하지 말라. 그대가 안개를 아느냐, 비를 아느냐, 구름을 보았느냐, 바람을 느꼈느냐, 그러니 침묵해라. 중산간 들녘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씨 뿌리고 거두며 마지막엔 뼈를 묻는 토박이들뿐이다···”(사진작가 김영갑 사진집 ‘1957~2005’의 글 중에서)

 

제주 올레길을 다시 돌아본다. 1코스는 중산간(中山間)의 오름과 들녘이 고즈넉하게 펼쳐진 곳에서 시작한다. 그 중산간의 오름과 들녘 속에서 무려 20년 동안 햇빛과 안개와 구름과 비 그리고 바다와 바람을 카메라에 담다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은 제주의 산야와 사람들을 이렇게 적고 있다. 뭍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제주올레를 추억하게 되는지 모른다. 중산간에 자욱한 안개와 비와 구름과 바람 그리고 햇볕을 잊을 수 없다.

 

1코스 위치는 제주도 동해안의 끝자락이다. 지난 2007년 9월8일 올레 길이 처음 열린 이후 이곳은 제주올레의 기준점이 돼왔다. 광치기 바닷가를 등에 지고 오름으로 향한다. 수평선의 바닷가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선다. 서귀포시 시흥리 시흥초등학교 아이들의 아스라한 재잘거림을 귓가에 굴리며 중산간의 오름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얼마를 걸으면 말미오름의 봉우리에 다다른다. 말미오름에서 눈을 들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봉이 다가온다. 탁 트인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두 봉우리, 그리고 지나쳐온 들판이 함께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 된다. 오름은 큰 화산활동으로 인한 해발 200~300m의 작은 기생화산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도에는 약 370개의 기생화산이 분포하고 있고 이들 지역을 중산간 지대로 부른다.

올레란 제주의 토박이말로 집 마당에서 마을길로 들고 나는 고샅길을 말한다. 그 올레는 언제나 모나지 않은 곡선이다. 제주도의 숨겨진 진짜 모습이다. 그 아기자기함이 제주도 토박이말을 닮은 듯하다. 이 길을 만든 서명숙씨(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의 책 ‘제주 걷기 여행’은 올레 길의 내력을 알려준다. 그 부제가 ‘놀멍 쉬멍 걸으멍’이다. ‘놀며 쉬며 걸으며’의 제주 말이다. 올레 길을 걷는 느낌을 전해준다. 그래선지 가까운 가족들의 호칭도 이응자 돌림이다. 어멍(어머니) 아방(아버지) 할망(할머니) 하르방(할아버지) 등이 그것이다. 낭(나무)도 엉(바위)도 바당(바다)도 그렇다. 올레는 그렇게 둥글둥글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사계절은 올레꾼의 마음에 제주의 모든 것을 가득히 채운다. 햇볕은 산야에 지천인 풀꽃 위에서 반짝인다. 들새 산새들의 지저귐은 귀바퀴를 돌아 가슴을 두드린다. 제주올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경이로움이 제주의 검은 돌담에 가려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가려있다니, 지나치고 만 것들이다. 동구길을 다시 떠올린다. 그 추억들이 올레를 따라 걸어 나온다. 피로사회를 걷어내는 위안이기도 하다.

 

그 제주올레 1코스에서 뜻밖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있어서는 안 될 안타까운 일이다. 올레꾼들의 마음 한자락에 우려로 자리 잡고 있던 사고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비교적 사람의 왕래가 있는 농로에서 발생한 일이다보니 안타까움은 더해진다. 무엇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올레길 뿐 아니라 어디서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사건은 올레길의 안전대책을 촉구한다.

 

올레 길에 나선 사람은 갈수록 늘고 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측에 따르면 제주올레 탐방자수는 지난해에 109만명을 기록했고 올해들어서는 6월말 현재 60만명을 넘었다. 이들의 안전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올레코스는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는 차원에서 조성돼 호젓한 곳이 많고 또 그것이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니 안전문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취약구간에 대한 CCTV와 순찰강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대책이 궁여지책이기는 하겠지만 가장 실망스런 선택으로 보인다. 전구간이 25개 코스 430km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길을 도시형 산책로와 같이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효과도 담보할 수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제주올레의 상징적 의미마저 무색하게 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공항에서 SOS 안심서비스 단말기를 올레꾼들에게 빌려주는 보다 실질적인 방법 등을 검토 중이다.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수칙과 관리 또한 강화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올레꾼들의 주의다. 여성들에게는 취약구역 함께 걷기 등이 권장되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 올레길이 하루빨리 모든 이에게 휴식과 위안의 길을 되찾아 주기 기원한다.

 

김광원칼럼 (내일신문 20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