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1984년’은 정치권력의 국민감시를 상징하는 미래소설이다. 1948년에 완성된 것으로, 전체주의적 지배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까지 통제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인터넷실명제의 현대 정치적 폐해를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건전한 인터넷문화 조성’이라는 포장지로 싸여있지만 그 실체는 ‘1984년’의 소설내용보다 더욱 교묘하다.
그 대표적 예가 2008년 10월 추진된 ‘사이버 모욕죄’라고 할 만하다. 2007년 7월 인터넷실명제가 도입된 지 1년여 만이다.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만든 이 법률안의 명분은 인터넷 상에서 악성 댓글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르며 그 주요원인이 악플(악성 댓글)에 있다는 주장 등을 주요 명분으로 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터넷실명제가 얼마나 악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이 죄는 인터넷 상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했을 때 2~3년의 징역형에 처하거나 수천만원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이다. 이 법률안의 꼼수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의 적용이다.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추(訴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검찰이나 경찰 등 국가공권력이 임의로 인터넷상의 댓글을 상대로 수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이 법은 피해자의 고소 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돼있다. 이는 곧 개인들 사이의 모욕행위 보다는 권력자나 특정한 세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특정 개인들의 생각을 검열하겠다는 발상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정치적 배경 중의 하나다.
‘미네르바’로 알려진 인터넷 논객 박대성씨는 이와 같은 정치권력의 구체적인 희생자였다. 검찰은 2009년 1월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박 씨를 구속했다. 이 때 적용된 법률이 전기통신 기본법 47조 1항이다.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 설비로 허위사실을 퍼뜨린 사람은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검찰은 1961년 제정된 이 죽은 법을 인터넷에까지 적용한 것이다.
법원은 그에게 무죄판결을 내렸고, 결국 이 조항은 헌법재판소(헌재)의 위헌결정을 받았다. 헌재는 ‘공익’의 개념이 명확치 않아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특히 헌재는 “헌법 21조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에는 ‘허위사실’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무리한 짓을 하고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위헌결정이 난 후 대체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무차별적 유언비어를 막기 위해서라는 게 그 주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사실 사이버모욕죄 신설이나 인터넷실명제 확대는 이명박정권 초기 촛불시위 때부터 정부 여당에서 경쟁적으로 논의됐다. 촛불민심이 인터넷에서 촉발되기 시작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007년의 인터넷 실명제는 당초 하루 방문자 30만명 이상 사이트를 대상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촛불시위 이후인 2009년 4월부터는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 사이트로 확대됐다. 사실상 전면적인 인터넷 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보수언론의 태도다. 이들은 언론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마저 내팽개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헌재의 전기통신 기본법에 대한 위헌판결에도 불구, 인터넷 상의 허위 글을 막기 위해 법적 공백을 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언론으로서의 기본자세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8월23일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헌재의 만장일치 위헌결정은 그동안의 국민 기본권 탄압에 대한 최종적 결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무섭다는 얘기는 민심을 지칭한다. 물이 넘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도 민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헌재의 위헌결정은 다른 많은 이유에도 불구, 민심의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재는 익명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소수자 보호와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익명이나 가명으로 이뤄지는 표현은 명시적, 묵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해 국가권력이나 사회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익명표현의 자유가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하여 계층, 나이, 지위, 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해 다양한 계층의 국민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해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초유의 악법을 5년간이나 강화해온 정치권이야말로 사망선고를 받은 인터넷실명제 도입의 무한 책임자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국민에 대한 진지한 사과 한마디가 없다. 겨우 한다는 얘기가 헌재의 위헌결정을 “존중한다”느니 “이해한다”느니 하는 정도이다. 여기에 ‘악성 댓글’의 부작용을 거론하며 “대선을 앞두고 있어 선거환경이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민을 앞세운다.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하다. 이런 정치에 대한 선거심판이야말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김광원 칼럼 (미디어오늘 20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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