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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미국·EU의 자유무역협정과 중국

구정 다음날인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6월말 안에 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년 안에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시한까지도 공개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정치경제와 안보의 끈으로 묶여 있던 미국과 유럽이 이제 이 유대관계를 더 강화하려 한다. 미국과 EU의 경제를 합하면 세계 경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경제적인 목적과 함께 양 측은 급속하게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미국은 지난해 2%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실업률은 아직도 거의 8%에 육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저성장을 타개하기 위해선 교역 확대가 필요하다. 경제 규모가 15조 달러로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인 EU 27개 회원국과 FTA를 체결하여 관세를 더 인하하고 환경과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단일 규제에 합의한다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EU는 미국보다 경제가 더 좋지 않아 일자리를 만들려면 무역을 늘려야 한다.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은 지난 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6%를 기록했다. 지난해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0.7%에 불과했다.

 

양 측 모두 교역 활성화를 위해 FTA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을 뿐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다. 누구와 먼저 FTA를 체결하느냐 하는 것은 고도의 외교정책이다. 미국과 EU의 FTA 협상은 관세인하보다 글로벌 스탠더드 설정에 더 역점을 둘 예정이다. 이미 양 측의 평균 관세는 3%로 매우 낮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자동차나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의 경우 양 측의 환경기준과 연비 등이 상이하여 제조업체들은 수출용 차를 별도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런 점을 들어 양 측이 단일 자동차 안전기준이나 환경기준에 합의한다면 생산비를 낮추고 더 많은 차를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 측이 이런 환경 기준에 합의한다면 EU에 차를 수출하는 우리는 이런 기준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에게도 EU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 수출하려면 이런 기준을 지켜야 한다. 왜 미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이 중국을 부상을 견제할 수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양 측이 단일 기준을 정하면 교역 상대국들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고 이런 기준이 다자간 무역협상에서 채택될 확률이 높아진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자국의 틀을 만들고 기존 질서를 조금씩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오고 있다. 미국과 EU의 FTA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빨라질 것이다.


미국의 대전략가이자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1976~1980)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즈비그뉴 브레젠스키(Zbigniew Kazimierz Brzezinski)는 <전략적 비전>에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미국과 EU 주도로 서방을 업그레이드하고 동양(주로 중국)을 포용시켜야 한다고 정책 결정자들에게 주문했다. 미국과 EU의 FTA는 바로 이런 전략의 하나다.

 

2~3년 전까지 EU 27개국은 중국에 이어 우리의 두 번째 수출시장이었다. 그러나 유로존의 경제위기로 지난해 EU는 우리의 네 번째 수출 시장으로 그 위치가 떨어졌다(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은 중국, 두 번째는 아세안 10개국, 세 번째는 미국이었다). EU 경제가 회복되면 우리의 수출도 다소 증가할 듯하다. 우리는 미국과 EU의 FTA 협상을 면밀히 주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경산신문 2013.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