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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칼럼/기고

아세안엔 유로존이 반면교사

지난달 25일 이탈리아 총선 이후 유로존이 다시 한번 국제정치 경제에서 불안감의 진원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이루어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유로존 위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세안이 유럽연합(EU)을 볼 때에는 역할 모델과 반면교사의 두 시각이 혼재해 왔다. 유럽연합이 순조로울 땐 역할 모델로 보는 면이 많았다. 


그러나 유로존 위기 이후 아세안엔 유럽이 반면교사가 됐다. 


1990년대 중반 아세안이 베트남을 비롯해 캄보디아, 라오스 등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비민주적인 나라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인 계기는 당시 유럽 및 미국에서 지역주의 바람이 강타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당시 단일 시장 완성 계획인 '1992'를 지나 단일화폐 도입을 준비 중이었고 미국은 캐나다 및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응해 아세안은 회원국 확대와 함께 안보 중심에서 탈피해 단일 시장의 형성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2010년 아세안은 아시아개발은행(ADB) 및 도쿄 소재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와 함께 '아세안 2030'이라는 비전 개발에 착수했다. 


이 작업에는 아세안 10개 회원국의 주요 싱크탱크들도 참여해 토론했다. 유로존 위기로 아세안의 진로를 모색해 보자는 성격이 강했다. 


지난해 말 공개된 이 연구 보고서 초안은 2030년 아세안의 목표를 '국경 없는 경제공동체'로 설정했다. 


아세안은 이 목표를 'RICH'로 표현했다. R(resilient)는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I(Inclusive)는 회원국 내, 회원국 간의 경제력 격차 해소, C(Competitive)는 경쟁력 있는 기업환경 구축, H(harmonious)는 경제 개발과 환경 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한다. 


아세안은 그리스 등 경제력 격차가 큰 '남유럽' 국가를 무리하게 단일화폐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이 유로존 위기를 일으켰다며 특히 'I'를 강조한다. 


유럽연합 전공자인 필자는 이 보고서에서 '아세안 방식'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점을 보면서 아세안이 EU를 반면교사로 보는 시각이 큼을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아세안 사무국엔 20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회원국의 단순한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 


사무국은 회원국들의 합의사항을 모니터링하고 감시하지만 위반국들을 제재할 권한이 없다.


내정 불간섭과 비공식적인 의사결정, 회원국 간 합의를 특징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 때문이다. 


초국가 기구가 정책 결정 및 이행 점검에서 강력한 권한을 보유한 EU와 크게 다르다. 


비전 보고서는 EU식의 과도한 제도화를 자제하면서 사무국에 회원국을 제재할 권한을 주는 방안과 합의제 의사결정도 다수결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세안이 하나의 단일 시장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도 지역주의 강화정책의 하나로 '하나의 아시아'를 염두에 두고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