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받는 언론정책
박근혜 정부가 마침내 출범한다. 일본 아베정부의 보수정책, 중국의 팽창주의와 북한 핵실험 등 국제사회의 형세는 거칠다. 중산층의 붕괴, 치솟는 비정규직, 노인의 잇단 자살과 대량 청년 백수 등 내부 상황도 녹록치 않다.
지난 대선 동안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이 안팎으로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직시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줄이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반사회적 폭력을 근절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이루겠다는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박근혜호가 출항에 나설 준비를 마친 지금 그러나 대선 기간 중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는 물론 널리 인재를 구해 골고루 활용하겠다는 탕평인사 약속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의도적 외면인지 아니면 미필적 고의인지 모르지만 대선 기간 중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언론관련 정책 역시 여전히 안개속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특정 정치인을 그들의 대리인으로 선정하고 일정 기간 동안 권력을 위임한다. 국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경우 그 대리인의 권력은 연장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박탈된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리인으로 군대, 경찰과 정보기관에 대한 지휘권을 포함해 국민의 지지라는 무형의 자산과 예산권 및 인사권을 독점한다. 대통령의 권력 행사는 그러나 5년 동안만 유효한 것으로 국정의 비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정책목표, 제한된 예산과 인력의 분배 등에서 취사선택이 불가피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정책이 없다는 것은 따라서 언론 관련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며, 지난 정부의 언론정책은 별다른 문제가 없고, 향후 국정 운영에서 언론정책은 중요 과제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하수도 시설, 통신시설, 에너지 설비, 고속도로나 병원과 달리 언론의 실패는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고 그 피해도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공적지식(public knowledge)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의 인지 능력과 판단력이 당장 악화되지는 않는다. 권력에 대한 환경감시가 실패할 경우에는 오히려 부정부패와 비리가 사라진 것 같은 착시효과가 생긴다. 언론이 사회적 약자의 다양한 관점 대신 권력집단의 주장만 앞세울 경우에도 소통부재에 따른 불만은 쉽게 표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창틀에 갇혀 국제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우리식으로 해석하고 우리의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할 경우에도 당장 직접적 피해는 없다. 하지만 언론정책에 대한 무관심은 맑은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잃은 다음에야 그 중요성을 깨닫는 것과 유사하다. 기존의 언론정책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전제 역시 문제가 많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낙하산 사장 취임 반대와 편집권 독립 등 언론자유를 주장하다 해고되거나 처벌을 받은 언론인은 무려 450명에 달한다. 1975년 동아자유 언론투쟁과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최대의 수난이다. KBS, MBC, 연합뉴스와 국민일보 등 방송과 신문이 동시 파업을 벌인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민간인 사찰과 권력 집단의 부정부패 등은 제대로 감시되지 않았다. 공중파 방송을 특정 정치인의 선거 운동을 위해 동원하고 이에 항의하는 언론인을 대량으로 좌천시키는 일도 발생했다. 국제경쟁력 강화와 신문산업 진흥을 목표로 종합편성채널이라는 특혜가 제공되었지만 콘텐츠의 다양성이나 저널리즘의 질적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을 통해 정부의 외환정책을 비판한 미네르바 사건 등에서 보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도 늘었다. 한국은 이제 인터넷 검열국가로 분류되고 있으며 인터넷상의 자유에서도 우간다와 동일한 지위로 추락했다. 국내 언론은 또한 대한민국의 주요 이해관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현안을 보도하는데도 소홀했으며 국제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시작된 외신을 대상으로 한 소통전략은 그 이후 흐지부지 되었고 국가 차원의 체계적 접근 노력도 없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혹은 의도적 외면은 이처럼 잘못된 진단에서 출발한다. 대선 기간 중에 등장했던 정치쇄신, 공정사회, 경제민주화, 정의실현, 청년실업 문제와 일자리 창출, 한반도 평화 등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언론정책은 다른 모든 정책의 기본이 된다는 사실도 놓치고 있다. 언론의 독립성과 다양성 보장, 언론인 전문성 강화, 뉴스 소비자 교육(news literacy)과 국제소통 강화 등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도 많다.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핵심 과제
군부독재 시절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은 비로소 독립할 수 있었고 제 자리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1997년의 외환위기와 정보통신혁명에 따른 경영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언론은 다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모두에 종속되고 있다. KBS, MBC, 연합뉴스 등 핵심 언론사는 정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에 장악되었으며 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홍보채널로 전락했다. 광고를 통한 경제적 압력으로 인해 특정 대기업의 비리에 침묵하고, 노동자와 중소기업과 같은 경제적 약자를 외면하고, 대기업의 입장과 주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경우가 늘었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나는 꼼수다>와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적 언론으로 표출되었고 불신과 반목으로 인해 사회적 연대의식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언론 독립성 강화를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관련 법안 정비와 제도적 지원 방안을 찾는 것은 따라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부와 대기업 등 기득권에 비판적인 언론은 지금도 좌파 또는 이적단체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다. 1980년 언론통폐합과 뒤이은 특혜로 형성된 언론의 독과점 현상은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더욱 심해졌다. 군사문화와 유교적 가치관을 통해 획일성과 통일성이 강조되었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정치권력과 예산이 모두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역 언론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 토호세력의 입장만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정치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계층, 집단과 지역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국제사회와 달리 지난 정부는 언론 산업의 진흥만 강조했다. 국민 다수가 소통 부재를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은 다양성 부족과 관련이 깊다. 보다 다양하고 다원적인 언론이 공생할 수 있는 뉴스 생태계의 구축이 요구된다.
도로망이나 통신망 등 공적설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관리자의 전문성과 성실함은 물론 이용자의 협력이 필요하다. 공적자산으로써 언론 역시 공동체의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제대로 운용되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공적지식의 제공자로서 언론은 복잡한 현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정보로 가공함으로써 국민 일반의 지적수준과 판단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 디지털 혁명을 통해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언론은 여전히 무슨 정보가 더 중요하고, 진실하며, 믿을 수 있는 지를 안내하는 전문 안내인의 역할을 맡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보다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언론인을 교육하기 위해 저널리즘 전문 대학원이 늘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또한 양질의 뉴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이 필요하다. 뉴스 리터러시는 따라서 뉴스 중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간하고, 뉴스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뉴스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식견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내 언론사들은 그럼에도 경영난을 이유로 언론인 재교육 과정을 상당 부분 축소했다. 대학의 저널리즘 교육은 취업을 위한 직무 교육에 치중되어 있다. 뉴스 수용자 교육을 전담할 기관도 없고 돈을 내고 이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도 없다. 언론계, 학계와 싱크탱크 등이 공동으로 뉴스21 프로젝트와 뉴스 리터러시 센터 등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 이와 관련한 관심과 투자는 거의 없다. KDI의 국정대학원처럼 저널리즘 전문 대학원을 설치하고 뉴스소비자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그래서 불가피하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발신전략은 지금까지 미국, 영국과 러시아 등 초강대국의 전유물이었다.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은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우호세력을 확대하고 상대 진영의 공조를 위해 언론을 통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몰두했다.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비방하고 부정적 편견과 적대적 이미지 확산에 집중되었던 프로파간다는 냉전 이후 언론을 통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로 변모했다. 국제사회는 이제 일자리를 늘리고, 신규 투자를 유치하며, 보다 많은 인재와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치열한 담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국의 매력과 관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데 있어 언론은 가장 중요한 통로다. 프랑스 24, 러시아 투데이, 알 자지라, 텔레수르 등은 이 목표를 위해 국가의 지원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공감과 동의'(hearts and minds)를 얻기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언론정책을 통한 국민행복 시대의 실현
정치제도, 경제제도, 교육제도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언론은 핵심적인 제도로 성장해 왔다. 입법부, 행정부와 사법부를 서로 분리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했던 것처럼 언론은 또한 제4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권력집단을 감시하고, 국민의 올바른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유도한다. 대내외 정책의 입안, 집행 및 평가에 있어 건전한 비판을 유지하며 양질의 공적지식을 제공함으로써 국가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한다. 언론의 자유를 법으로 보호할 뿐만 아니라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부당한 이유로 명예훼손이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론의 위기를 맞아 언론관련 법안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언론관련 연구와 조사에 국민 세금을 쏟아 붓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언론정책은 그러나 정치적 목적과 기업 논리에 따라 왜곡되었다. 국민은 언론을 불신하고 언론인은 떠나고 언론의 품격은 낮아졌다.
대한민국의 무역의존도는 100%에 달했고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과 채권의 비중은 물론 자본시장 개방도는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미국과 그리스의 금융위기가 곧바로 국내 경제위기로 전이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평가는 금융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과 대치하고 있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국제사회의 협력도 절실하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과 소통 노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국제뉴스에 대한 언론의 투자는 날로 줄고 있으며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해졌다. 언론은 이제 정부, 언론계와 시민사회 등이 공동으로 개입해야 대표적인 시장 실패 영역이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정치적 평가에 있어서도 큰 변수가 아닌 분야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제외될 수 있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영역도 있다. 다른 국가에서는 정부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영역으로 관련 정책 자체가 없다면 한국만 다르게 행동할 이유도 없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언론정책은 이러한 경우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언론정책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무관심은 그래서 못내 위태롭기만 하다. 향후 제대로 된 언론정책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저널리즘의 복원이라는 비전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언론답지 못할 때 국민행복 시대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관훈저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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