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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힘
"질문의 힘은 대단 하지만 제대로 된 질문하기는 힘들어 현재 불거진 일들 여러 질문 불러일으켜"
주말을 맞아 거실에서 뒹굴라치면 아내가 문득 제안을 한다. “청소 도와줄래, 아니면 설거지 할래?” 뭐가 좋을까 짧게 머리를 굴린 다음 “청소를 하겠다”고 답한다. 아내는 손해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 “좋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청소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문득 의문이 생긴다. 만약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질문 대신 “집안일 좀 도와 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면 어땠을까? 굳이 안 도와줘도 되지만 선심 쓰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리한 질문을 던진 아내 덕분에 좀 손해를 보긴 했지만 질문의 힘을 다시 깨닫는 좋은 기회였다.
질문은 힘이 있다. 고려시대 만적의 난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흑인 인권 운동의 아버지 루터 킹 목사는 백인과 흑인이 같이 식사하고 놀면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음으로써 평등한 사회를 이끌었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질까라는 질문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냈다. 인간은 왜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비행기가 만들어졌고,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상대성이론이 등장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꾼 모든 현장에는 뜻밖의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질문하지 못하는 것은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모두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돌고 있다고 믿을 때 반대로 지구가 돈다고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도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조선 500년 동안 이어져 온 남존여비(男尊女卑)가 깨지지 않은 것은 다르게 살아가는 여성을 보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전에는 질문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1980년대 동유럽의 붕괴나 2010년 아랍의 봄에서 보듯이 주변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 때 “우리는 왜 못하지”라는 질문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당한 질문이 제대로 제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무자비한 탄압에 있다. 역사적으로 신분제에 의문을 제기했던 많은 이들이 반역죄로 죽임을 당했다. 왕이나 성직자나 군대 지휘관에게 명령이 과연 정당한지를 질문했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부당한 권력일수록 질문보다는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사람은 누구나 의견 및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각각 세계인권선언 19조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나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 없이 그 어떤 질문도 제기할 수 있다는 불가침의 선언이다. 그래서 감히 질문해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만한 역량과 품성을 갖추고 있을까? 작전권을 한사코 마다하는 군인들은 정말 지혜로우며 그들의 판단은 정당한 것일까? 채동욱 사태와 남북정상 회담 대화록 논쟁을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누구며 그 비용은 누가 지불할까? 자신은 물론 자기 아들도 군대에 보내지 않는 공직자가 과연 자기 앞가림에 앞서 공익을 먼저 생각할까?
다소 불온한 듯 보이는 질문이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크게 틀린 것도 아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왕과 사대부의 잘못된 정세 판단과 무능한 외교의 참혹한 결과였다. 광복 이후에도 지도층의 무능과 타락은 변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과 간첩단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김영삼 정부의 판단 착오와 대응실패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공작정치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70대 어르신이 속속 권력자로 복귀하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 201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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