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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키우기의 경제학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개그콘서트 ‘두 분 토론’에서 2년 전쯤 유행했던 말이다.
개그맨 박영진 씨는 남자는 하늘이라는 ‘남하당,’ 김영희 씨는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여당당’의 대표. 서로 토론하다가 항상 결론은 남자가 하는 일은 다 필요해서이고 여자는 남자를 잘 섬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자가 집안일을 하지 않고 돌아다니면 누가 소를 키울 거냐며 박영진 씨가 고함을 지른다. 여기서 소 키운다는 말은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를 키우면 돈을 벌 수 있는가?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빈곤 퇴치 방법을 연구하다가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유난히 소를 많이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착안해 소 키우기를 경제적으로 꼼꼼하게 따져봤다. 결론은 소를 키우면 평균 64%의 손해를 본다는 것.
인구가 12억명이 조금 넘는 인도(2013년 7월 말 기준)는 80%가 힌두교 신자다. 힌두교는 소를 신성하게 여기는데 인도 전역에 약 2억 8000만 마리의 소가 있다. 소를 키우는데 사료 값만 일 년에 약 160달러(우리 돈으로 17만원 정도) 지출된다. 여기에 농부의 수고 등 다른 비용-외양간 유지, 꼴을 베고 수의사 비용-까지 합하면 연간 소 키우는 비용은 최소 200달러가 넘는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소를 키울 필요가 없지 않는가? 품도 많이 들고 돈도 벌지 못하는데 왜 소를 키우지?
경제학자들은 이런 의문에 여러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아무리 ‘경제인’이라지만 만사를 이익과 비용만 따지고 살지 않는다. 힌두교 신자이기에 신성하게 여기는 소를 소유하면 심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집에서 치는 소에서 짜먹는 우유는 믿을만하고 품질이 좋다. 소똥은 농사에 아주 유용하기에 이런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그럴듯한 경제적 설명도 있다. 인도는 국토가 아주 넓고 도로나 다리, 철도 등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다. 인도 농촌 지역의 7% 정도에만 은행 지점이 있다. 농민들은 여윳돈을 그대로 쓰거나 저축할 수 있는데 저축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 때 소를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저축이 될 수 있다는 것. 소를 키우면 사료도 사야하고 농민도 부지런해야 한다. 만약에 소가 없다면 사람들은 수중에 있는 돈을 일단 쓰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자들의 이런 글을 읽으며 일전에 봤던 영화 <워낭소리>가 생각났다.
지난 10월 초에 작고한 최원균 씨는 소 ‘누렁이’와 30년 넘게 함께 살았다. 다리가 불편한 경북 봉화 산골마을의 농부였던 그에겐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누렁이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최씨는 누렁이에겐 신선한 꼴이 좋다며 논밭에 농약을 치지 않아 항상 처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논밭을 합해 몇 백 평 되지 않던 최씨는 30년 넘게 누렁이를 키워 9남매를 교육시켰다. 보통 15년 산다는 소가 최씨의 정성 때문이었을까? 40년 넘게 살고 누렁이의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을 지켜보던 주름 가득한 그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 쇠코뚜레를 풀어주며 ‘좋은 데 가거레이’라고 말해 주던 그. 소 무덤까지 만들어주며 가끔 무덤에 찾아와 애통해 했다.
우리 모두에겐 소중한 게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뭐 대수냐며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지만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게 있기 마련. 소중한 것은 돈으로 비용계산이 어렵다. 천금을 준데도 바꾸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소든지,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뒷동산이든지, 아니면 동네 놀이터였든지 간에.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2013. 11. 04, 경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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