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군에 작전권을 위탁하고, 수도인 서울에 미군 기지를 허용한 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미국에 대한 국내 엘리트의 사대주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맹렬한 기세로 국제화를 추진한 결과 한국은 국제사회의 사소한 소란에도 쉽게 동요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 시장에 들어왔던 미국계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환율은 다시 1,600대로 치솟았고, 코스피 지수는 1,000이 붕괴되었다. 반복되는 한국 때리기에 급기야 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등 관련 언론사를 방문해 협조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에는 핵전쟁의 위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국가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라크로 군대를 파견하면서도 정작 그 사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지하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의 문화적 자존심이 한껏 높아졌지만 국제뉴스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서방언론사에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외신을 통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한국의 목소리를 전달할 길도 없다. 한국이 처한 구조적 모순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비교적 안전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시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이 가진 군사전략적 가치를 더 중시했다. 한반도의 특수성 덕분에 한국은 1983년 일본으로부터 무상 차관 40억불을 받을 수 있었고, 남미 국가들처럼 국가파산을 모면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직후부터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대함은 사라졌다.
미국 무역대표부를 통해 한국은 거듭 압박을 받았고, 금융, 문화, 서비스 분야 등 전반에 걸쳐 많은 양보를 해야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서도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서야 겨우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얻어냈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2,915억 불이나 되는 미국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갖고 있지만 달러화의 하락에 따른 천문학적 손실은 고스란히 한국이 감당해야 한다(이찬근, 1998; 조영철, 2009).
더구나 한국의 든든한 후견자였던 미국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유럽과 브릭스(브라질,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새로운 권력이 부상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게임이 다변화 되면서 정부의 역할은 줄어들고 국제적 언론사,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비정부 기구의 영향력은 증대하고 있다. 씨엔엔과 비비씨가 독점하던 국제 공론장에 알자지라, 프랑스 24, 러시아 투데이, 텔레수르, 도이치벨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매체들이 한국의 국가이익을 대변해 줄 것 같지도 않다.
한국에 와 있는 외신을 적극 활용해 한국을 대변하도록 하는 것도 한계가 많다. 해당 국가의 대외정책은 물론 자국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위해 나와 있는 이들 외신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즉 한국 사회에 대한 정보제공과 환경감시가 목적인 외신들이 한국을 위해 미디어 외교를 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KBS World와 아리랑 방송이 있지만 고품격 저널리즘을 통한 국가 발신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연합뉴스 영문판이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국제사회에 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통신사의 속보성 단신기사를 통해 한국의 관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도 없다.
글로벌 사회에 흩어져 있는 엘리트들이 편리하게 접근하고,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한국에 대한 매력을 갖도록 하기에는 콘텐츠도 너무 빈약하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국가에서도 24시간 영어뉴스 채널을 출범시키고, 위성, 케이블, IPTV, 인터넷과 스마트 미디어 등 다양한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동의 작은 국가 카타르(Quatar)의 전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동의 작은 나라 카타르(Qatar)에는 알 우데이드(Al Udeid) 미국 공군 중부 사령부가 있다. 카타르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해 세금이 없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카타르에 있는 이 기지를 사용했고, 카타르는 항상 이란과 시리아 등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동의 친미정부에 불과했던 카타르가 최근 2011년 리비아 사태에서는 아랍연맹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알자지라가 있다.
카타르 정부는 그동안 인근 아랍 왕국에 대한 알 자지라 방송의 비판에 간섭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알자지라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알자지라의 성공을 모방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알후라(Al Hurra)를, 사우디아라비아는 알 아라비야(Al Arabiya)를, 레바논은 레바논방송(The Lebanese Broadcasting Corporation)을 잇달아 설립했다. 한국에서 가칭 Korea 24와 같은 영어뉴스 채널을 만들 경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Korea 24를 위한 실천적 전략은 무엇인가?
고품격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미디어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상업방송 모델이 아니라 공영방송 모델이 더 적합하다. 러시아 투데이, 프랑스 24, 도이치벨, 알자지라 등은 모두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물론 공영방송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프랑스 24와 같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합작하는 형태도 가능하고, 정부로부터 일정한 출연금을 받은 후 장기적으로 재정적 독립을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그러나 경영과 편집의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미디어 외교의 성패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데 있으며 만약 ‘프로파간다’ 도구라는 불신이 생기면 영향력은 사라지고 만다. 정권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고, 단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성숙한 편집 방침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 알자지라의 경우 범 아랍주의라는 명확한 편집 방향이 있었고, 중동의 인권문제, 독재와 폭력주의 배격 등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래서 알자지라 출신 기자들이 최근의 분쟁 기간 동안 특히 많이 희생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엘리트층을 포함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담론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제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 대중적 설득 언어의 활용술, 엄격한 직업윤리, 투철한 국가관 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Korea 24는 이에 따라 언론인의 전문성 제고,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한 연구기능 확충, 맞춤형 콘텐츠를 실현하기 위한 수용자 조사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Korea 24가 한국을 만나는 제1 관문이 될 수 있는 콘텐츠 전략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인권, 평등, 자유, 평화, 경제적 번영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핵심 아젠다로 설정하는 한편, 한국어 배우기, 한국에 대한 이해, 한국의 멋, 한국인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도 개발해야 한다. 고품격 뉴스를 통해 잠정적 ‘고객’을 확보하고, 이 플랫폼을 통해 관련 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목표 공략층(target audience)을 명확히 설정하고 영어와 더불어 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언어로 서비스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고려할 때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아시아적 가치, 문화, 관점과 한국의 국가이익이 조화할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된다(김태현, 2005; 이근, 2006). 미국과 유럽에 있는 엘리트를 목표로 하기 보다는 한국이 처한 구조적 모순과 같은 상황에 있으면서, 한국의 매력과 가치를 배우고자 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준비하는 전략이 더 좋다.
목표 공략층과 관련 콘텐츠를 준비한 다음에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해당 지역 지상파 방송업자 또는 케이블 사업자와 협력관계를 체결해 ‘일반채널’로 Korea 24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와 관련한 비용도 미리 책정해야 한다. 향후 한국판 24시간 영어채널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 될 경우를 위해 이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한국의 국가전략, 실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경쟁력 분석, 인력 운용 및 교육제도, 편집권 독립방안 등에 대한 후속연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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