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과 리비아의 가다피 국가원수의 다정한 포옹 (죽음의 키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많은 것들이 외환위기 이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회라면 최소한 IMF가 뭐하는 곳인지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IMF 본부가 중립국인 스위스가 아닌 미국에 있고 그것도 워싱턴의 재무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역 1조 달러 클럽 가입. 세계 10위 경제대국.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놀랍다. 그러나 국제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은 위태로울 만큼 낮다. 한국의 국가이익과 너무도 밀접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언제 왜 생겼는지, 무디스와 S & P 등 신용평가 회사는 왜 모두 미국계인지, 인터넷 주소는 누가 관리하는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떤 관계인지 등에 대한 지식수준은 부끄러울 정도다.
2012년 이라크, 리비아에 이어 다시 시리아와 이란에서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다. 얼핏 보면 간단한 사건이다. 중동의 패권국이 되고 싶어 하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중동의 평화를 위해 이란에 대한 제재는 꼭 필요하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독재정권은 국제사회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쿠르드족을 대량학살하고 국민을 기아로 내몰았던 사담 후세인과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에 총질을 한 콜 가다피 역시 처형당했다. 인터넷 혁명을 통해 얻은 값진 민주주의의 승리다. 한국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고, 국제사회의 지배적 여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
민주화 현장으로 알려진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이란 모두 이스라엘과 관련이 깊다.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 시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은 주요 산유국이다. 미국 달러 대신 유로화나 다른 수단으로 석유 대금을 결재하기로 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UN을 통한 제재가 논의된 것도 동일하다.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이집트, 바레인, 예멘과 달리 민주화 시위가 순식간에 무장봉기로 바뀐 것도 재미있다. 미국의 CNN, 영국의 BBC, 프랑스의 France24, 카타르의 Al Jazeera 등을 통해 대량학살 장면이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것도 흡사하다.
게다가 외부의 무력개입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카타르, 바레인, 예맨, 사우디아라비아 등에는 공통적으로 미국의 군사기지가 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해외 군사비 지원’(Foreign Military Financial)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는 정보는 허위였고, 이란의 위협설도 의문이 많다.
국제사회의 개입이 좋은 결과를 낳지도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보호받은 민간인도 있지만 적으로 분류된 다수의 시민은 희생되었다. 강대국의 개입으로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이라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 테러가 터진다. 리비아에서는 내전의 조짐이 번지고 있다. 전쟁도 피하고 내부 분열도 최소화 하는 한국과 필리핀과 같은 민주화의 길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국내 언론에서 이런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러시아투데이(RT)나 신화사네트워크(Xinhwanet) 등에 나오는 대안적 관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중동 석유를 둘러싼 국제정치, 달러패권 등 관련성이 높은 주제들이 깊이 있게 다루어지는 경우도 없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중동문제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은 피상적이고 편협하다.
그간 한국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보호막 아래에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에 임박해서도 정부는 미국만 바라봤다. 미국 출신의 유학파가 넘쳐나고, 미국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미국이 우리를 대변해 주는 이상 고민할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와 이란 모두 한때는 미국의 우방국이었다.
국제사회를 제대로 배우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출발점은 양질의 국제보도다. 미국, 유럽, 중국과 일본이 돈이 남아돌아서 국제보도에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생존하기 위한 필수 비용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 국제보도 전문가는 거의 없다. 국제부 출신이 특파원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인터넷을 통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영어권 기사를 단순 편집하는 것도 관행이 되었다.
독일, 프랑스, 베네수엘라, 이란, 중국, 러시아가 했던 것처럼 정부가 나서 24시간 영어채널을 만들 의지도 비전도 없다. 물론 다른 사람의 머리와 입을 빌어 세상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두뇌를 외부에 맡기는 것은 곧 자신의 운명도 위탁하는 것이라는 점은 기억하자
(신동아, 3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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