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후퇴와 신문산업의 위기
신문이 전달하는 뉴스는 ‘공적지식’(public knowledge)이다. 단순한 1차 정보가 아닌 고도의 분석력과 일관된 탐색 작업과 엄격한 사실 확인 과정 등이 모두 포함된 고부가 가치의 정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고부가 가치의 정보지만 뉴스는 특정 집단 또는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정에서 공적인 서비스 상품에 해당한다. 영화 <모비딕>에 나오는 한 장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언론모델은 이러한 공적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광고와 구독료라는 재원에 의존하는 모델이었으며 디지털 혁명 등을 통해 이러한 수익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신문사가 우수한 인력을 활용해 장기간의 투자에 걸쳐 고비용을 지불해 생산한 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무료정보로 둔갑하고 만다. 뉴스저작권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언론사가 심혈을 기울여 생산한 뉴스는 곧바로 다른 언론사에 의해 모방되고 만다.
과거 광고시장에서 신문이 차지했던 안정적인 지위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분류광고(Classified ads)는 인터넷 무료게시판에 잠식 당했고, 인터넷 광고시장이 급성장 하면서 광고시장에서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종이신문을 배달하는 유통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구독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그나마도 젊은층에서 종이신문은 거의 외면 받고 있다.
신문사의 수익원이 고갈됨에 따라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 역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탐사보도, 기획보도, 국제보도 그 어느 것 하나 고비용 저효율의 상품이 아닌 것이 없다. 줄어든 광고 파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이들 기득권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은 약화되고 언론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
중산층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구독자 시장이 형성되는 것 역시 저널리즘에는 부정적이다. 기본적으로 독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신문의 입장에서 독자와 전혀 동떨어진 아젠다를 택할 수도 없고, 이들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회 문제를 이슈화 할 수도 없다. 신문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거나 광고 또는 구독률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방식의 모델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저널리즘 회복은 어려운가?
언론의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1900년대 초반 뉴욕타임스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언론모델이 등장하기 전 신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독한 정파성과 황색저널리즘이었다. 정당, 종교단체, 노동조합 및 이익집단의 재정적 지원을 받던 당시 신문사 입장에서 당연히 이들의 입장을 ‘편파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언론인의 수준은 물론 신문의 독자층 역시 당시 새롭게 등장한 종이라는 뉴미디어에 취해 있던 상황에서 ‘종이’에 실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뉴스가 되었다. 신문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독자’를 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정적, 자극적, 감정적’ 뉴스였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신문사의 난립은 자연스럽게 신문사간 합병을 가져왔고, 조셉 퓰리처의 <뉴욕 월드>나 윌리엄 허스트의 <모닝 저널>과 같은 전국적 규모의 언론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정보의 홍수를 겪으면서 중산층 독자는 점차 “아침 밥상에서 소비할 수 있는 품격있는 정보”를 요구했고 최초의 권위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타임스>가 1896년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 뉴욕타임스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다수의 중산층을 양산할 만한 수준으로 미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광고’를 하고자 하는 기업 또한 큰 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광고라는 새로운 수익원에 눈을 뜨고, 때 마침 등장한 ‘전신’이라는 기술을 받아들인 신문사가 ‘객관주의’와 ‘전문주의’를 표방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은 당연했다.
신문사는 그 이후 거대 언론기업으로 성장했으며, 1947년 로버트 허친스 시카고 대학 총장이 주도한 <허친스 위원회>(Hutchins Commission)는 미디어 소유 집중에 따른 “언론사의 자유”로 인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광고와 구독료에 기반한 신문사의 상업모델은 그 이후 몇 차례의 위기를 거치지만 그 때마다 탐사보도의 강화(19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 등), 공공저널리즘의 강화(1990년대), 지역밀착형 보도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을 통해 광고시장이라는 안정적 수익원이 붕괴되면서 신문사는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받는 현실이다.
미디어 빅뱅이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신문이 과거와 같은 규모의 ‘신문인쇄, 지원, 유통’ 부서(인력)를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크리스찬사이언스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가 최근 종이신문 발간을 포기하고 온라인으로 완전히 전환한 것이나, 미국내 언론사 대부분이 조만간 종이신문 배포를 중단할 것이라는 계획은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광고를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의존할 경우 신문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랄 수 있는 ‘권력감시’와 ‘탐사보도’ 등의 고품격 콘텐츠를 감당할 수 없고, 이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도 없다. 인터넷 상에서 지구촌 곳곳의 정보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신문의 생존 전략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가공된, 그리고 집단적 작업을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은 공적지식’일 수밖에 없다.
광고수익을 확보하는 방안이 어려울 경우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콘텐츠’를 유료화 하거나 사업다각화를 통해 뉴스콘텐츠 제작에 따르는 비용을 대신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따름이다. 미국, 유럽과 일본의 경우 권위지 대부분이 거대 미디어 기업으로서 이들은 뉴스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방송을 포함해 잡지 및 미디어 유관 사업 등에 진출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에서도 신문사들 간 합병이 가능해야 하고, 수직적 수평적 통합의 길이 열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경영과 편집의 분리가 엄격하고, 언론인이 상당한 정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누리는 이들 국가와 달리 국내에서 섣부른 신문/방송 겸영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방송시장이 이미 포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종편 역시 광고 확보에 목을 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후퇴는 구조적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비영리 모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몸집을 최대한 가볍게 함으로써 ‘콘텐츠’ 생산에만 집중하고, 유통 및 제작 비용을 현저하게 줄이는 디지털 기반의 신문사도 가능한 전략이다.
신문의 신뢰도 하락, 원인은?
한국 신문은 불운했다. 외환위기 직전 국내에서 신문 시장은 공급과잉이었다. 갑작스런 위기로 인해 광고시장이 급속히 축소되고 은행들의 특혜 대출도 거의 사라졌다. 신문증면, 사업다각화 등을 위해 국내 다른 기업들과 유사하게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던 신문사들은 불가피하게 경영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으로 기자인력에 대한 대폭적인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다른 기업과 달리 전문성을 가진 언론인은 하루 아침에 양성되지 않는다. 언론인의 대량해고는 곧바로 콘텐츠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정리해고를 겪은 언론인들의 이직 행렬도 이어졌다. 콘텐츠가 급속하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IT부양 정책이 시작되었고 포털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론이 급속하게 확대되는 제2의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신문사는 포털에 주도권을 빼앗겼고 무료로 콘텐츠를 넘겨주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콘텐츠가 무료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콘텐츠 투자 여력도 급격히 악화되었고, 성급하게 시작한 온라인 웹 전략 역시 방문자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신문사의 권위와 신뢰도가 함께 하락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1998년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정권을 잡았고 이에 따른 권력의 대변환이 이루어진 것 역시 언론의 정파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확대되는 계기였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지에서는 과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신문을 활용했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지에서는 새로이 등장한 권력을 지키고 정당화시키기 위해 언론의 독립성을 상당부분 양보했다. 보수지와 진보지 모두 정파성에 몰입했고, 주류 언론에 식상한 국민이 직접 언론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시민은 기자다”를 선언한 오마이뉴스가 2001년 출범했고 그 매체의 성공은 그 이전 전통적 언론사에 의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무수한 이익집단과 개인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성공적으로 자기 주장을 확산시키는 상황을 연출했다.
전통적 언론사의 경우 이중의 위기를 맞아 자사 인력에 대한 투자는 물론 콘텐츠 품질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기 시작한 대중은 한국 언론의 ‘전문성’ 부족을 눈으로 확인하는 사건을 여러 차례 겪었다. 언론인의 조기 퇴직 및 잦은 이동 등으로 인해 언론인이 기업체 홍보맨으로 정부의 홍보전문관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도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을 부채질 하는데 기여를 했다.
홍보기사의 범람, 뉴스와 광고 맞바꾸기, 언론사의 윤리의식 둔화, 광고주에 대한 종속 심화 및 금융/재테크 뉴스와 연성뉴스의 확대 등도 신문 구독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독자들은 더 이상 신문에 나오는 기사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고, 경영압박에 내몰린 신문사의 입장에서 다른 선택을 하기도 어려웠다.
글로벌 전체의 특징 중의 하나인 ‘양극화’ 역시 전통적 주류 신문사의 설 자리를 앗아갔다. 전국지 중에서도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일부 신문사들은 ‘핵심’ 독자층과 ‘광고주’ 및 ‘정부’를 배경으로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지역밀착형의 소형 신문들도 뉴스제작비를 최소화 한 상태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전국지 중에서도 중간에 위치한 신문 및 지방의 중견 지방지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지방지의 위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명품’ 콘텐츠, 차별화 된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을 경우 플랫폼의 증가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지상파 방송국에 끌려 다녔던 독립제작사들이 채널수가 급증함에 따라 오히려 갑의 상황으로 반전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신문의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최소한 다음에 나오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얼마나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가에 그 해답이 있다. 빌 코바치와 탐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라는 책에는 미국 전역의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원칙을 제시했다.
1) 저널리즘의 첫번 째 의무는 진실을 추구하는 데 있다
2)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해야 할 대상은 시민이다
3) 저널리즘은 사실 확인의 규율에 충실하다
4) 저널리즘은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5) 저널리즘은 권력에 대한 독립된 감시자로 기능하고 있다
6) 저널리즘은 공적 비판과 타협을 위한 광장을 제공하고 있다
7) 저널리즘은 지역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흥미롭고 관련성 있게 전하고 있다
8) 저널리즘은 포괄적이고 비중에 맞는 방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9) 저널리즘의 종사자들은 양심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10) 저널리즘은 시민들이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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