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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나는 언론이다' 경연대회를 기다리며,




임재범, 박정현, 김범수, 김연우, BMK, 이소라, 윤도현, 바비킴, 윤민수, 신효범... 지금까지 출연한 가수만 해도 이름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진주가 발굴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부끄러움도 잊은 채 눈물 흘리고 열광하는 관중들은 또 지금껏 그 목마름을 어떻게 참았을까?

 김어준,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방송의 고정 출연진이다. 팟캐스팅(Podcasting) 방식이기 때문에 1회 제작비는 겨우 7-8만에 불과하다. 일반 라디오 방송처럼 정규 편성도 아니고 방송 시간도 1시간에서 2시간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도 1주간 다운로드 횟수가 거의 200만을 넘는다. 이 놀라운 인기몰이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물을 마시지 않고 목마름을 해결할 길은 없다. 허기진 배를 물로 잠시 채울 수는 있어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 산다. 돌아 볼 추억이 아련하고, 나누고 싶은 아픔이 있고, 위로가 필요할 때 진짜‘노래’는 향수가 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반칙과 꼼수가 판을 친다고 느낄 때 진짜‘언론’을 찾는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지고, 흐르는 강물을 막으면 그 옆으로 돌아가는 이치라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 특히 2005년 이후 비영리언론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18세기 종이신문은 혁신적인 뉴미디어였다.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고, 동조세력을 모으고, 상대편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 종교적 신념과 옹호하는 가치로 분열되었던 신문은 광고와 중산층의 정보수요라는 매력적인 수익원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추문이나 경제인의 비리, 유명인의 사생활을 다룬 삽화와 만화로 도배된 대중지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도 늘어갔다. 전신(telegraph)의 발명으로 사실 중심의 간략한 정보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정파적인 정보가 아닌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1896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는“뉴스다운 뉴스로 아침 식탁을 더럽히지 않는 신문”을 표방했고 광고와 구독료를 매개로 한 지금의 언론모델이 정착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명은 광고라는 수익원의 변화를 초래했다. 신문이 독식하던 분류광고는 순식간에 인터넷 게시판에 잠식당했다. 포털, 블로거,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 대안언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신문에 몰렸던 광고는 분산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혁명을 통해 공짜 뉴스를 마음껏 이용하게 되면서 굳이 구독료를 지불해야 할 이유도 줄었다. 이윤을 남겨야 하는 민간 기업이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았다.

고비용 저효율로 알려진 뉴스, 그 중에서도 국제뉴스와 탐사보도가 축소되었으며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흥미위주의 가벼운 뉴스가 늘었다. 그러나 경제는 물론 정치, 문화와 안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는 더 밀접하게 통합되었다. 양질의 국제뉴스가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이 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정부와 기업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언론사가 집단적 협업을 통해 맡았던 환경감시 기능은 더욱 중요해졌다.

 
2007년 7월.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편집장이었던 폴 스티거(Paul Steiger)는 사표를 제출한다. 호주 출신 미디어 재벌 루퍼드 머독의 WSJ 인수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그해 겨울, 스티거는 한 독지가로부터 1,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조건은 단순했다. “당신이 원하는 뉴스를 한번 만들어보라.”

정치적 압력은 물론 경제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언론다운 언론’을 꿈꾸었던 그가 뜻을 같이할 기자를 모집했을 때 경쟁률은 10:1이 넘었다.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이렇게 탄생했으며 2010년에는 온라인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 비영리언론사가 단순한 실험이 아닌 대안으로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물론 미국의 텍사스트리뷴(Texas Tribune), 민포스트(Minnpost)와 아이와치뉴스(iwatchnews) 등이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기부문화가 없고, 좋은 뉴스를 유료로 팔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뉴스 이용 방식도 다르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곤 지금의 광고와 구독료로 양질의 뉴스를 제공할 수 없다.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광고의존도가 특히 높은 상태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탐사보도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낮다.

게다가, 연합뉴스와 외신기사의 무분별한 베끼기, 기사와 광고 맞바꾸기, 자사이기주의에 따른 정치적 편파보도, 집단정서 편승 등 언론답지 못한 모습에 식상한 국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생각한다. '나는 언론이다’의 흥행 실적이 반드시‘나는 가수다’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신동아, 2월호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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