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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종편은 한국언론의 구원이 될 수 있을까?


글로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저널리즘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적인 언론사가 독점하던 뉴스 시장은 글로벌 검색업체, 뉴스 중개업체, 인터넷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 업체, 블로거와 인터넷신문 등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수한 경쟁자로 붐비고 있다. 글로벌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일부의 초국적 언론사와 소규모 지역공동체에 집중하는 소형 언론사 중심의 양극화 역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종이라는 뉴미디어를 매개로 광고와 구독료를 통해 안정적으로 뉴스를 공급하던 비즈니스 모델도 무너지고 있다. 광고 시장은 디지털 매체에 잠식되고, 온라인 광고의 수익성은 여전히 낮은 가운데 국제뉴스, 분석기사와 탐사보도와 같은 고비용 뉴스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다. 비용 절감의 압박 속에서 편집국 인력은 줄어들고,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콘텐츠의 품질은 하락하고, 선정적인 복제 뉴스는 확대되었으며, 그 부작용으로 독자의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언론사라는 전문적인 정보중개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던 시대는 저물고, 이들을 거치지 않는 뉴스 유통이 일상화 되었다. 과거 언론을 통해서만 독자를 만날 수 있었던 많은 사진작가들이 자신들만의 웹 사이트를 통해 구매자와 직접 만나고 있으며, 구글(Google), 유투브(You Tube)와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새로운 유통망이 콘텐츠를 대량으로 중재한다. 전문성과 윤리성으로 무장하고 언론사라는 조직을 통해 집단적으로 일하던 전문적 언론인(professional journalists)의 권위 역시 추락하고 있다.

스마트 미디어로 무장한 아마추어 기자가 등장했고, 기존 언론사의 방문객을 능가하는 파워 블로거 역시 현실이 되었다. 전문 언론인과 일반인이 협업하는 네트워크 저널리즘이 활성화되었고, 전통적 언론이 누리던 의제설정 능력도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의제가 대안언론과 블로거를 통해 순식간에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위키리크스와 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언론의 편집 능력도 도전받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이에 따라 전통적 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포함해, 뉴스 콘텐츠 전문화 및 차별화 전략, 언론인 전문성 강화 교육, 비영리언론 모델의 도입, 디지털 전략의 확대 등과 같은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저널리즘에 대한 국내의 지원 역시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러한 글로벌 경향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특히 신문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주력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안정적 수익원 확보를 위해 종합편성채널도 허용했고, 신문법과 지역신문법 등을 통해 직접적인 재정적 지원도 서둘렀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 이후 신문사의 경영 여건은 일단 안정 상태로 접어들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부도가 나는 신문사는 없었다. 또한 경제지의 경우에는 이 기간 동안 꾸준히 확대되었으며 신문의 부흥기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국내 저널리즘의 위기가 극복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저널리즘의 핵심 영역의 하나인 공적지식의 제공에서 국내 언론의 피상적인 보도는 악명이 높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피상적이며, 위기가 반복되는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부족하다. 황우석 사태에서 확인된 것처럼 전문적인 과학 분야에 대한 언론의 검증 능력과 인식 수준은 아마추어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전문기자가 설 자리가 없는 현실에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학, 기술, IT, 환경 분야의 뉴스는 흥밋거리 기사나 주변적인 이슈로 전락했다. 급격하게 줄어든 광고 수익과 큰 폭으로 감소한 독자층을 유지하기 위한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언론의 정파성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 서거보도, 금융위기 보도, 촛불시위, 미디어법 개편, 한미 FTA 보도에 있어 언론은 자사의 입장에 따른 정파적 보도를 당연시 했고, 국민 여론은 분열되고 언론사 간 교류도 거의 정체상황에 있다. 국제뉴스에 있어 특정한 정보원에 대한 의존도와 지식의 사대주의 역시 악화일로에 있다.

로이터와 AP와 같은 글로벌 통신사에 대한 정보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고, 인터넷을 통한 취재는 일상화되었다. 특파원을 파견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파견하는 언론사들이 늘었고 글로벌 시대에 오히려 직접 취재한 국제뉴스가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이 전통적 언론사를 대신해 뉴스소비의 주요 창구가 된 상황에서 방문객 규모를 늘리기 위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의 범람 역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신문의 광고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신규 광고주는 발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과 현대와 같은 재벌은 물론 정부와 공기업에 대한 광고의존도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언론의 존재 가치의 하나인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환경감시 기능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들이 싫어하는 뉴스는 아예 공론화되지 못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동북공정, 천안함 사태 등에서 보듯 정서적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보도가 지속되고 있으며, 국가이익을 둘러싼 국민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과 신문사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저널리즘의 복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도 희박하다.

먼저 종합편성 채널의 상업적 성공을 통해 언론사의 재정이 안정된다고 해서 이들 언론이 환경감시, 공적지식의 제공, 공론장의 구축, 다양한 여론의 반영과 같은 언론의 본질적 역할에 더 충실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언론이기에 앞서 이윤을 실현해야 하는 민간기업의 특성이 강화됨에 따라 고비용 저효율의 국제보도, 탐사보도, 분석보도, 기획보도는 불가피하게 외면될 가능성도 높다. 방문객 규모의 극대화를 위해 온갖 잡동사니 정보를 나열해 놓고 있는 현재의 닷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들 언론사의 웹 사이트가 지속적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속옷 광고와 임플란트 광고가 범람하는 닷컴에서 인터넷 언론이나 아마추어 블로거가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적이고 전문적인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독자는 없다. 콘텐츠에 투자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얻은 공짜 뉴스를 편집해 제공하는 언론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와 대기업의 감시자가 아니라 이들의 조력자 또는 스스로 국민위에 군림하는 제4부의 권력이 된 언론사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과 분노도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 ‘모든 시민이 기자다’는 <오마이뉴스>가 등장하고, <나는 꼼수다>와 같은 대안 라디오에 국민이 열광하는 것은 민주화 이전 대자보에 열광하던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국내 저널리즘이 처한 독특한 문제를 감안했을 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만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전략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