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멘붕 스쿨이 뜨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6월24일 시작한 코너인데 8월5일 시청률이 22.9%라고 홍보한다. 상담교사가 학교를 그만두려는 문제 학생들을 불러 대화를 나누다 자신이 ‘멘붕’되는 이야기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멘붕은 ‘멘탈(mental) 붕괴’의 약어로 약한 정신적 충격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아니다.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인 충격보다는 굉장히 웃기는 상황, 황당한 상황, 어이없는 상황 등으로 인한 가벼운 놀람의 상태를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할 때 이용된다는 것이다.
멘붕 스쿨은 위키백과의 설명 그대로 굉장히 웃기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한 학생은 “말이 안 통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그 불통의 이유가 주경야독을 주경야동으로, 헬리코박터균을 헬리콥터균으로, 달팽이관을 나팔관으로 잘못 말했기 때문이다. 학생은 “그게 그거 아니냐”고 따지자, 상담교사는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자문한다. 멘붕이 이 정도의 의미라면 다행이다. 시청률이 더 올라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
정작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멘붕적인 상황이다. 말뜻 그대로 ‘정신적 붕괴’상태가 실제상황이라는 말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이명박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도 같은 맥락이다.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되는 현상이 유체이탈의 사전적 의미라고 한다면 그의 화법은 보통 심각한 멘붕 수준이 아니다. 그가 지난해 9월 “현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을 때 유체이탈 화법이 본격 거론된 것은 우연이랄 수 없다. 줄줄이 비리로 구속된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그런 정황을 웅변한다.
이명박 정권 몇 개월을 남긴 시점에서도 이와 같은 멘붕상태를 초래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2개 대형 사건만 해도 그렇다. 무엇보다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는 경호·경비 전문업체인 컨택터스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멘붕상태가 얼마나 우려할만한 정도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컨택터스의 노동자 폭력진압은 그 자체로서 끔찍한 일이지만, 폭력의 합법화·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사회구조적 멘붕상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컨택터스의 군사기업 못지않은 장비들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헬멧이나 방패 혹은 진압봉 등 개인장비는 경찰을 방불케 한다. 시위진압을 위한 특수견과 살수차 등을 갖추고 있는가 하면 무인헬기는 물론 3000명까지 분쟁현장에 동원할 수 있다니 군대나 다름없다. 컨택터스는 이런 인력과 장비들을 동원, 지난 7월27일 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쟁의현장을 공격하는 군사작전을 편 것이다. 쟁의 중이던 40여명의 병원에 실려 갔다니 그 폭력성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동안 경찰은 보고도 모른척했다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나온다. 피해자의 구조요청은 물론 폭력자들의 불법행위를 방관한 것이다. 마치 콘택터스를 지원하는 인상마저 주었다고 한다. 기업화된 민간조직이 국가의 공권력을 대행해 폭력을 행사하고 공권력은 이를 비호한 셈이다. 법치주의를 앞세우며 노조탄압에 앞장서온 이명박 정부 하에서 어떻게 국가의 역할이 멘붕사태에 이르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멘붕은 대선정국에도 끼어들고 있다. 대선후보 중 대세론의 선두주자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의원이 멘붕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는 7월6일 열린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합동연설회에서 “저는 네거티브에 너무 시달려서 멘붕이 올 지경”이라며 “그러나 그런 것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 국민들을 위하여 할 일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이 사건의 희생자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건의 발단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의 3억 뇌물공천 의혹사건이다. 8월2일 중앙선관위가 현 의원을 검찰에 고발, 알려지게 됐다. 이에 따라 4·11 총선 당시 돈공천 파문의 책임론이 박 후보에게 모아진 것이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총괄지휘한 박 후보는 당연히 돈공천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라는 논리다. 야당에서는 박 후보의 대선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새누리당의 비박 대선후보들 역시 박 후보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한 때 경선일정을 거부했다. 박 후보의 멘붕 운운은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박 의원의 이번 돈공천 파문에 대한 시각이다. 그는 이 의혹이 터지자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처리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 와중에 음모론이 나오기까지 했다. 최근 측근비리 등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 측이 여권을 압박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헷갈린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박 후보는 이번 사태로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지만 자신도 피해자라는 인식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사건의 추이를 바라보는 국민이 멘붕을 겪을 차례인지 모른다.
김광원 칼럼 (미디어오늘 20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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