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지난달 25일 출범했지만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야가 정부조직 개편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나서서 여야를 비난하며 국민에게 직접 진실을 믿어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대선 공약의 하나로 제시됐으나 국정 5대 목표에서 제외된 경제민주화는 어떻게 되나?
경제민주화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용어도 드물다. 중소기업인들에게 이 용어는 자신의 업종까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장악한 재벌기업의 이 분야에서의 사업 철수를, 재래시장 상인에게도 대형마트를 앞 다투어 세워 생존권을 위협하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손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에 재벌이나 시장경제를 신처럼 떠받드는 학자들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기업이 이익을 보는 분야에 진출하여 사업을 하는데 정부가 왜 개입하느냐는 논리를 내세우며 경제민주화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학자들은 경제민주화를 보통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기업 의사결정의 민주화(기업 지배구조의 개선), 둘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기업을 운영하고 자본은 곧 회사로 본다면 주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거대 기업 주식의 10%도 소유하지 않은 재벌이 그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황제처럼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또 재벌들은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2세나 3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여 부를 대물림해왔다. 미국식의 주주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선 ‘오너’자본주의로 변질되어 운영되어왔다.
대기업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많은 특혜를 받아왔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저금리 장기 자금지원을 받았고 규제도 미미했다. 이처럼 대기업 위주의 유리한 법적 기업 환경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하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려면 법적인 규제를 통해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규제해야 한다.
필자는 경제민주화 논쟁을 보며 독일의 노사공동결정(co-determination)이 제외된 것을 보고 아쉬웠다. 아마도 근로자를 ‘머슴’으로 여기는 우리의 뿌리 깊은 유교사상 때문에 이런 안건을 경제민주화의 하나로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본다.
1976년 당시 서독의 사회민주당 정부는 노사공동결정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시행에 나섰다. 이 법에 따르면 근로자 2천명이 넘는 공기업·사기업들은 기업의 경영감독위원회 절반 인원을 근로자 대표로 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엔 이사회만 있지만 독일은 이사회 이외에 이사회를 감독하고 기업의 중장기 경영전략 등을 결정하는 경영감독위원회가 별도로 있다. 그런데 이 경영감독위원회의 절반을 노사 대표가 차지한다. 근로자 500~2000명 기업은 근로자 대표의 1/3 정도가 경영감독위원회에 참여한다. 독일의 체계적인 직업교육과 경영감독위원회는 ‘독일모델’의 핵심을 이루어 그동안 경제발전과 부흥의 원동력으로 지적되어 왔다.
노사공동결정은 근로자들을 회사 경영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사 결정자로 본다. 근로자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고 고용주와 함께 회사의 중장기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임금도 적절하게 조절하기 때문에 생산력 향상에 기여한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서울의 모 사립대학교에서 십여 년의 민주화투쟁을 이끌고 총장까지 역임한 교수님을 잘 알고 있다. 이분은 총장 재직 시 중요 결정에서 노조의 의견을 경청하여 학교를 잘 이끌었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을 먼 나라의 일로만 보지 말고 우리도 상황에 맞는 적합한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경산신문 20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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