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엉뚱하게 ‘과다노출 범칙금 5만원’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상징적이다. 이 회의에서 과다노출에 대해 벌금 5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경범죄 처벌법 개정 시행령이 통과되자 누리꾼들은 곧바로 이를 ‘박정희 유신시대 회귀 시작’ 등으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다노출 범칙금 5만원’은 형식상 경범죄 강화가 아닌 완화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뿌리가 유신에 있다는 점이다. 이 조항은 1973년에 등장했다. ‘공중의 눈에 뜨이는 장소에서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하거나 안까지 투시되는 옷을 착용하거나 또는 치부를 노출하여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게 한 자’에 대한 처벌규정이다. 이 내용이 몇 번의 개정을 거쳐 ‘과다노출’조항이 됐고 즉결심판(약식재판)을 거쳐 구류 또는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이런 내용이 이번에 5만원의 벌금만 내면 되도록 하는 절차 간소화와 벌금인하가 이루어진 셈이다.
문제는 이번 조치로 오히려 경찰의 단속이 쉬워지고 남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경찰이 이를 모를 리도 없다. 경범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을 고려한다면 ‘과다노출 범칙금 5만원’이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할 만하다. 더욱 이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1970년대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유신의 추억’이 이제 일상의 일로 다가서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시사적이다.
대통령의 사람들부터 유신의 추억이…
박근혜정부 장관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5.16에 대한 역사인식의 시각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5.16과 관련,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공부가 돼있지 않다”고 빠져 나갔다. 교과서는 물론 법원판결에 명시된 5.16 군사정변에 대한 답변이고 보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에 다름 아니다.
서남수 교육과학부 장관의 답변은 귀를 의심케 한다. 그는 ‘5.16이 군사정변인가, 혁명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어쨌거나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정하느냐에 대해서 편이 갈리는 상황”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또 “역사적 사안과 현안에 대해 교육부 장관이 휘둘리면 그 통합의 역할을 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교육부 장관이 이럴진대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의 태도가 이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정부조직법 협상에 요지부동의 불통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그 중요한 목적은 언론장악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유신의 추억’을 현실화하는 첫걸음일 수 있다. 그는 취임 후 8일 만에 처음으로 가진 대국민 담화에서 웃음 대신 노여움을 드러냈다. 그는 새정부가 출범한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국회가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아 헌정사상 초유의 공백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방송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이관문제가 여야 간에 논란의 핵심이다. 방송정책을 미래부에 이관시킬 경우, 방송의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야당의 반대 이유다. 박대통령은 이에 대해 “방송장악을 할 의도도 없고 법적으로 불가능하다”하다는 당위적 주장을 앞세우며 핵심쟁점을 미래부의 신설여부로 몰아가고 있다. 그는 신성장동력의 발굴과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미래부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어서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방송정책, 원안고수 만이 능사는 아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한지 일주일 만에 가진 첫 국무회의에서 타협보다는 오히려 공세를 강화하는 모습이었다. 여의도 정치를 겨냥하는가 하면 한반도 위기상황을 앞세우기도 했다. 그는 “정치가 기득권 싸움 때문에 실종돼 가고 있다”며 국회를 정면으로 겨냥하는가 하면 북한의 전쟁위협에도 불구,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이 공백이고 국정원도 마비상태”라고 강조했다. 안보를 앞세운 야당압박이다.
따지고 보면 누구도 미래부의 신설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해 방송정책 권한을 기존대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두면 쟁점은 해결된다. 그것이 미래부의 신성장동력 발굴이나 일자리 창출에 역행한다는 논리는 현실적이지 못한 일종의 핑계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박 대통령이 원안고수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미래부가 유료방송 플랫폼에 대한 인허가권 등 방송정책을 독임제로 관장할 경우, 정부의 기존 방송사업자에 대한 통제가 훨씬 쉬워진다. 또 새로운 방송사업권의 허가나 규제완화 혹은 강화 등을 통해 방송생태계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갈등요인에 대한 효과적인 제어도 용이하다. 아예 방송의 독립성이니 공공성이니 하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유신의 언론’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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