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방송>에 실린 글이다.
월파(月坡). 시인 김상용의 호다. 그의『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에“왜 사냐건 웃지요”란 대목이 있다. 살아가는 이유를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물론 말 몇 마디로 정리는 안 되지만 그 이유를 크게 보상(報償)과 처벌(處罰)로 묶을 수는 있다. 보상은 권력, 명예, 재물처럼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이유를 말한다. 반면 공포, 굶주림, 고립과 멸시 등은 무엇을 못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처벌(punishment)에 해당한다. 성적우수상, 개근상, 저축상, 효행상. 학창시절 한두 번씩은 받아 받음직한 상이다. 학생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데 있어 이 상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동기생을 괴롭힐 경우에는 정반대로 정학, 얼차려와 청소와 같은 벌칙이 주어졌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보상과 처벌 시스템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
평소에 너무 당연히 누리고 있어 그 필요성을 자주 까먹는 것 중에 물과 공기가 있다. 유감스럽지만 물과 공기는 없어지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저널리즘 역시 이런 존재다. 콧대 높은 정부 관료, 면책 특권이 있는 국회의원, 무소불위의 재벌,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이 국민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은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중동 분쟁, 북한 동향과 같은 국제적 현안은 물론 정부정책, 물가동향, 흉악범죄, 자연재해에 대한 정보 역시 언론을 통해 얻는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환경미화원에 대한 인권 유린, 비정규직의 문제, 지역 차별 등 공동체의 화합과 번영을 위협하는 문제점 역시 언론을 통해 공유하고, 논의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공동체의 위기가 되고 만다. 일반 국민과는 다른 특권을 언론인에게 부여하고, 언론사의 경영위기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언론이 좀 더 언론다울 수 있도록 집단의 지혜를 모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언론의 정파성은 몰라도 언론의 사유화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공공성 때문이다.
국내에도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보상과 처벌 제도가 있다. 언론학자와 시민단체의 언론감시, 미디어오늘 및 기자협회보의 언론비평, 특정 신문에 대한 소비자 운동 등은‘언론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처벌에 해당한다. 반면 좀 더 언론다울 수 있도록 하는 보상책으로는 출입처제도, 언론인 연수지원, 언론지원 사업 등이 있다. 한국기자협회, 관훈클럽, 삼성언론재단, 청암언론문화재단 등에서 실시하는 언론관련 수상도 적지 않다. 보상과 처벌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미국, 일본이나 독일 등 저널리즘 강국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저널리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을까? 언론환경의 차이, 경제와 문화 문제 및 국민의 의식 등 다른 변수는 두고라도 이 제도 자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운영의 미숙함 때문일까? 저널리즘 관련 상을 대표하는‘한국기자상’과 ‘이달의 기자상’을 통해 그 의문을 풀어보자.
한국기자상은 1967년 제정되어 매년 1회 수상자를 선정한다. 1990년 9월에 시작된 이달의 기자상은 매월 시상하며, 두상 모두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다. 심사위원단은 평균 15명에서 20명 선으로 현업 기자를 중심으로 언론학자와 변호사도 일부 포함된다. 매체별, 정치성향별, 지역별 안배를 통해 구성한다. 심사위원들의 평균 임기는 2년 정도다. 심사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선출하고 다수결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다. 그러나 적당한 대상자가 없는 부문의 경우 시상을 하지 않는다. 심사 대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사장 또는 회원 7명 이상의 추천서, 공적설명서와 관련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경쟁부문은 취재보도, 경제보도, 기획보도, 및 전문보도로 두 상 모두 동일하다.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중에서 한국기자상이 선정된다. 다만 한국기자상의 경우 조계창 국제보도상과 공로상이 추가된다는 점은 다르다. 국내 유수의 언론인 및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많은 기사가 이 상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과 언론계 내부에서 이 상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고 그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평가기준과 목적의 모호성, 분류의 문제 및 운영방식의 한계 등을 통해 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신문․방송․통신에 게재된 기사 중 가장 좋은 기사”“기자 사회에 적극적․긍정적 자극을 제공하는 촉매 역할.”한국기자협회가 밝히는 평가기준과 목적이다. 좋은 기사란 사회적 반향이 크고, 기사 발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취재원칙에 충실한 것이라는 내부 준칙도 있다. 그러나‘좋은 기사’의 기준은 가변적이다. 국민을 계몽하는 언론, 독재정권에 투쟁하는 언론, 공정하고 중립적인 언론 등 언론의 시대상도 다르다. 다시 말해, 권력의 비리를 고발하는 언론만큼이나 글로벌 경제위기, 국제분쟁, 한미FTA와 같은 복잡한 현안을 공공지식(public knowledge)으로 가공해 국민의 이해를 도와주는 언론도 필요하다.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에 영향을 주는 이슈를 공론화하고 국민의 동참을 주장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자유, 평등, 평화, 통일, 정의 등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적극 대변하는 것도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좋은 기사’라는 기준에서 이러한 역할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언론을 포상하는 궁극적 목적은 언론(인)들로 하여금 더 좋은 저널리즘을 통해 공공이익(public interest)에 이바지하도록 하는데 있다. 단순히 기자 사회를 자극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이라고 말한 이유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봤을 때도 선출되지 않은 제4부의 권력인 언론의 이익과 공공이익은 충돌할 때가 많았다. 특히 권력형 비리에 대한 속보 경쟁을 부추길 경우 공동체 정신의 붕괴, 정치혐오,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 성숙한 여론 형성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경쟁부문의 부적절성 역시 지적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좋은 기사상의 대부분은 취재보도, 기획보도, 경제보도에서 나왔다. 전문보도 부문은 있지만 후보작도 거의 없다. 보도사진 부분에서만 꾸준히 수상자가 나오는 이유다. 취재보도, 기획보도 및 경제보도의 상당수는 또한 비리관련 특종기사다. 그간의 수상 기사에는“최태원 회장 형제 선물투자 손실 SK그룹 보전 의혹수사 특종, 벤츠검사 비리 의혹,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법정관리 비위, 악취나는 대구 정화조 업계, 농약치는 염전, 충격실태 - 국가시험이 샌다, 1100억 혈세 투입 광주시내버스 준공영제 긴급진단, 금호-비컨 이면계약 드러났다, 편의점 현금영수증에서 수백억 혈세 줄줄 샌다, 전경련 로비대상 정치인 할당 파문”등이 있다. 공동체와 관련한 주요 현안으로는“고용난민시대 - 일자리 없나요? 이유 있는 질식사, 환경미화원 인권보고서,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비정규직 800만 시대,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신빈민촌 희망찾기, 수질오염 사각 동천강 대해부, 1등급만 뽑은 연고대 입학사정관제”등으로 비중이 훨씬 낮다.“연중기획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AI 기획리포트 “잔인했던 봄, 그리고 앵무새의 경고”, 우리나라 지적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이에 대한 대안 제시, 노동 OTL 연재기획“ 등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공공지식 기사는 더 적다. 국제보도 분야의 수상작은 지난 10년 동안 <연합뉴스>의 ”北 여객열차 단둥도착...특별열차인 듯“ 단 한건이었다. 물론 역량이 안 되는 기사에 대해 포상을 남발할 수는 없고, 국내 언론이 특히 이러한 부분에 취약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의 퓰리처상처럼 분류가 좀 더 적절했다면 후보작도 늘고 좋은 기사도 발굴될 수 있었다.
퓰리처상은 모두 14개 부문이 있다. 퓰리처의 꽃은 금메달을 주는 공익서비스(Public Service)로 공동체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미국 버지니아주의 천연가스 로열티 지급 비리,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간호사 감독체계, 라스베가스 지역의 건설 노동자의 높은 사망률 폭로, 전쟁 부상병의 처우 문제 등의 기사가 상을 받았고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공동체의 번영과 안정 분야로는 국제이슈, 전국이슈, 지역이슈가 있고, 공공지식과 관련해서는 분석․해설 부문이 있다. 권력비리를 포함해 보편적 가치 전반에 대한 감시를 위해 탐사보도 부문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으며 속보부문을 통해 정확한 정보의 신속한 전달을 평가한다. 영화에 각본상과 비슷한 인물기사(Feature story) 부문을 통해 대중적 글쓰기의 품격 제고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 밖에도 논평분야, 문화비평, 사설과칼럼, 만화, 속보사진과 인물사진 등의 경쟁항목이 있다. 한국에 비해 훨씬 다양한 분야의 기사가 평가를 받고 이를 통해 저널리즘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 품격 있는 저널리즘이라는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는 운영방식도 문제다.
미국의 유수 저널리즘 상으로는 피바디상, 알프레드 듀퐁상, 에드워드 머로우상, 제럴드 로엡상 등이 있다. 독일에서는 헨리 난센상, 테오도어 볼프상, 한스 스토로프상,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경제기자상 등이 유명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일본신문협회상, 일본언론인회의상, 일본기자클럽상, 와세다저널리즘대상, 갤럭시상 등이 있다. 매년 1회 시상식이 열린다. 포상금의 규모도 최소 1,000만 원 이상이다. 한 두건의 특종을 했다고 주는 경우는 별로 없고 몇 년간의 공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언론인 협회가 아닌 컬롬비아대, 조지아대, 하버드대, UCLA 등 대학이라는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결정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현업 기자들은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지만 한국과 같은 매체별 배분은 없다. 1년 동안의 성과를 평가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공적설명서에는 관련기사만이 아니라 사회적 반향 정도, 정책 변화와 같은 후속조치, 보도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등을 모두 담아야 한다. 물론 한국기자상도 형식적으로는 1년에 한번 수상하며 보도 이후의 성과를 보완한다. 그러나 매월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해외의 유수 저널리즘상과는 다르다.
퓰리처 선정위원회는 미국 컬롬비아 저널리즘 대학원 4층에 있다. 70대 중반의 시그 기슬러(Sig Gissler)가 20년째 위원장을 맡고 있다. 비서실과 붙어 있는 위원장의 사무실은 고풍스러운 위엄과는 거리가 멀다. 위원장의 역할은 미국 전역에 있는 역량 있는 기자들을 찾아 심사위원을 부탁하는 일이다.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은 기자와 전문가들은 무료로 봉사한다. 방대한 후보작의 1차 검증 작업은 이 대학 저널리즘 대학원생의 몫이다. 이들 역시 자원봉사다. 뛰어난 작품을 직접 평가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안다. 3년 정도의 임기로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하는 선정위원회는 최종 후보작을 검토한다. 퓰리처상과 관련한 모든 재원은 후보자들의 응시료와 뉴욕에서 열리는 수상식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관이나 개인이 낸 참가비로 충당한다. 퓰리처상 선정 작품은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미국과 전 세계 기자들에게 전달된다. 수상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인기 강사로 초빙되고 기사는 책으로 발간된다. 학교에서는 이 기사를 모범 교재로 쓰고 학생들은 그들을 인생의 멘토로 삼는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일종의 축제인 셈이다. 한국판 퓰리처상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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